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조양욱·구자호 글·사진/엔북 펴냄
일본통 글쟁이 기자와 평생을 사진기와 함께 살아온 사진쟁이 기자 OB 두 사람이 만든 포토에세이집이다. 그 두 사람은 조양욱 전 국민일보 도쿄특파원과 구자호 전 조선일보 사진부장이다. 조양욱은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지켜보며 여러 책들을 써온 손꼽히는 일본 전문가이다. 구자호는 일간지 사진기자로 뉴스의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특종을 터트리는 등 보도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온 사진가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한 눈을 팔았다.
조양욱은 그가 직접 겪었거나 풍월로 엿들은 세상사, 그 중에서도 슬며시 가슴이 아려오는 감동의 사연들을 하나씩 글로 엮었다. 일단 그가 매달려온 '일본'이라는 평생의 과녁에서는 슬쩍 빗겨난 것이다. 조양욱은 이 책의 후기에서 "여기 묶은 글들은 '나이 든 철부지' 마냥 부려본 응석, 누군가에게 조그만 위안이 되고 따뜻한 손길이 될 수 있다면 그저 그만이겠다"고 했다.
구자호는 오랜 손때가 묻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엉뚱하게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그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툰'기능을 이용하여 100일 동안 셔터를 눌러 처음으로 인쇄물에 담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래선지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수채화로 그린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이렇게 두 사람의 외도(外道)가 창조해낸 실험적 산물이다.
이 책에는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는 모두 33꼭지의 세상살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총 3부로 구성했으며, 1부에는 우리 주변의 사연을 모았다. 이발사 할아버지의 꿈, 중국동포 순애 씨, 소풍, 막사발같은 회고록 등을 실었다. 2부에는 한국뿐 아니라 바깥 세계와도 연결되는 이슈를 골라 담았다. 북녘 동포,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 애국심 등을 싣고 있다. 3부에는 저자의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일본과의 인연을 주로 다루고 있다. 재일교포인 이양지와 유미리 등 일본서 만난 네 여인 이야기와 함께 반쪽바리와의 우정, 유별난 일본인 등을 적고 있다.
이런 식의 작위적 구분이 있긴 하지만 근본은 똑같다. 세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의 두 손을 꼭 쥐고, 휑하니 뚫린 마음에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글 속에 의도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지는 않았다. 그냥 독자들이 편안하게 읽어보고, 저마다의 감흥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것이 요즈음 출판계의 유행이라는 자기 계발서나 '힐링'의 레테르를 붙인 서적과 궤를 달리하는 점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픽션이 아니라 글쓴이의 오랜 체험이 오롯이 녹아내린 '따뜻한 사연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자신의 시 한 구절을 이 책의 제목으로 쓰도록 한 정호승 시인은 추천사에서 "나는 그(조양욱)의 글이 너무 아프지 않아서 좋다. 그의 글은 화끈하지도 화려하지도 심오하지도 찬란하지도 않다. 그는 다만 은근하고 조용하다. 고담준론을 펼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마치 우리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간장종지 같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톡 쏘는 매운 겨자 맛이 들어있다. 우리가 초밥을 먹다가 겨자가 많이 든 것을 잘못 먹어 눈물이 팍 쏟아질 때가 있는 것처럼 그의 글에도 눈물이 팍 쏟아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 시가 바로 정호승 시인의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이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입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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