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Hist oriae)에 따르면, 의사가 없었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치료법이 있었다고 한다. 병에 걸린 사람이 장터에 나가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병에 걸렸느냐고 묻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환자는 증상을 말해 주었는데 그중에 똑같은 병을 앓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의 치료법을 알려주곤 했단다. 환자에게 무슨 병이냐고 묻지 않고 모르는 체 지나가서는 안 되도록 돼 있었단다. 당시 장터는 이렇게 몸이 아픈 병자와 그에게 치료법을 알려주는 사람들로 북적댔는데 이때가 남들에게 치료법을 알려주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황금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로부터 4천 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위암 환자들은 수술 후 퇴원 전에 앞으로의 생활과 주의할 점, 그리고 환자들의 가장 깊은 관심사인 식사의 요령 등에 대해 빠짐없이 설명을 듣는다. 퇴원 후 보통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외래 진료를 통해 주기적으로 만나 상담과 검사를 한다. 그때 누누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음식은 가급적 골고루 드시고, 특히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도 많이 잡수세요"이다.
그런데 상당수 환자들을 퇴원 후 만나보면 "힘들지만 이것저것 피하고, 오로지 몸에 좋다는 몇 가지만으로 생식만 하고 있다"거나 "육류는 입에도 안 댄다"고 한다. "저는 한 번도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요?"라고 물으면 "주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란다. 그럴 때마다 너무 답답해서 "위암 수술을 2천 명도 훨씬 넘게 한 제가 주변 사람들보다 못 미덥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이런 상황을 보노라면 의사가 없었던 수천 년 전의 바빌로니아와 별반 다름이 없는 듯하다.
뇌졸중을 전문으로 하는 선배 교수에게 "결국 주변 사람보다 내가 못난 탓"이라고 한탄을 하니 자기도 무릎을 두드리며 맞장구를 친다. "글쎄, 내 환자들도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후에는 너무 음식 가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무조건 채식만 하더라니까? 식사 때마다 괜한 스트레스 받으면 오히려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피가 응고돼 막히기도 쉽고, 혈압이 높아져 출혈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데 말야!"라고 한다. 사실 뇌졸중은 내 전공도 아니고 학설도 워낙 분분해서 잘 모른다. 다만 선배가 늘 주장하는 '뇌졸중에 가장 나쁜 것은 혈관에 힘주는 것. 그래서 무조건 스트레스를 줄일 것'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환자들은 이미 많이 놀랐고 마음도 많이 약해져 귀가 얇을 수밖에 없다.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훈수에 솔깃해지겠지만 지금은 수천 년 전의 바빌로니아가 아니다. 제발 주치의사가 권하는 대로 하자. 그리고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쓸데없이 혈관에 힘주지도 말자.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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