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페이스북 소회(所懷)

컴맹에 가깝지만 업무와 관련해 컴퓨터 사용이 잦다. 손에 익은 프로그램만 사용하니까 큰 무리는 없지만 뭔가 좀 다른 시도를 하자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운영체제가 바뀐다거나 업그레이드를 하면 적응하기가 어렵다.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블로그를 만들기도 했지만, 업데이트하기에 허겁지겁이다. 놀자고 한 것이 일이 된 꼴이어서 몇 년째 버려두고 말았다.

그저 한때의 유행 비슷한 듯하여 시작한 페이스북(페북)은 그 속도감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친구가 많지 않은데도 제때 글읽기도 만만찮아 거의 포기한 상태다. 그나마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페북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높아졌다. 가끔 글을 올리고 댓글을 쓰기도 하지만, 묘한 이질감이 접속을 꺼리게 한다.

스마트폰에서는 읽기 쉽지 않은 작은 글씨도 그렇지만,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이 사람, 저 사람을 소개하는 것도 참 곤혹스럽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고대 탈레스 시대 때부터 내려온 철학의 '인식론적인 앎'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10년 전에 한 번 힐끗 본 사람도 기억했다는 후한(後漢)의 응봉(應奉)처럼 일면지식(一面之識)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생소한 '알 수도 있는 사람' 앞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알 수도 있을 것'이라며 소개를 할까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좀 익숙해지자 이들이 페북 친구의 친구임을 알게 됐다. 친구의 친구니까 알 수도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 기능은 페북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되도록 한 뛰어난 장점이다. 사회생활이 관계의 연속이라면 페북은 이 관계를 손쉽게 찾고, 친구를 맺게 해 대부분 사용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래도 처음 느꼈던 곤혹스러움이 좀체 가시지 않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슬며시 혼자 바라는 속내 때문이다. SNS가 끊임없이 진화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언젠가 소식이 끊긴 학창 시절 친구나 이래저래 잊고 살았던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불쑥 내밀며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걸맞지 않은 문명의 이기를 붙들고 낑낑거리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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