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복(67) 미건의료기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5개월 전 중국 베이징에서였다. 기자는 경북 출신 재중 교포들의 성공담을 취재하고 있었고, 이 회장은 미건의료기 중국법인 행사 참석차 방문 중이었다. 포항 출신의 사업가라는 얘기만 듣고 만나보니 차분하고 점잖은 분이었다. 단순한 사업가라고 하기에는 논리가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캐물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는 금성(현 LG) 연구소 출신이고, 대전에서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의료기를 들고 사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분임을 알게 됐다. 요즘 가정이나 목욕탕,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침대형 개인용 온열기를 처음 개발해 상품화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엔지니어가 대박 상품을 만들어낸 전형적인 사례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성공한 벤처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용 의료기의 탄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아픔이 있었고, 주위의 친인척들이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의료기 사업을 구상했어요. 미래에는 건강산업이 가장 유망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지요."
그는 얼핏 의료기와는 무관한 듯한 공학도였다. 부산대 기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성 연구소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냉장고를 국산화하는 주역이 되는데 에어컨'냉장고의 핵심 장치인 컴프레서(공기압축기)를 개발한다. 그 후에도 심야전기를 이용한 빙축열 시스템(심야보일러), 장유'식품 제조 자동화기기 등을 처음 개발해 경험을 쌓았다. 이때 갈고닦은 기계'전기 분야의 전문기술이 뒷날 개인용 온열치료기를 개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30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의료기를 들여와 고가에 팔 뿐이지, 국산 의료기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독자적인 발명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1988년부터 개인용 의료기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어요."
그의 사업 계획은 시의적절하고 면밀했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검사 및 촬영장비 개발에는 아예 눈을 돌리지 않고, 의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신개념의 제품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서양의학의 카이로프랙틱(손으로 척추를 교정하는 의술)과 동양의학의 침, 뜸, 온열요법을 접목해 기계'전기적인 장치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는 "온열기가 신경세포와 근육세포의 집합체인 척추경락과 경혈을 따라 온열을 전달하고 자신의 체중을 통해 지압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 몸의 휘고 뒤틀린 부분을 교정해준다"고 설명했다.
◆대박사업이 되다
사업 초창기에는 의료계로부터 엄청난 냉대와 멸시를 받았다. 임상시험을 하려고 해도 응해주는 곳이 없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누구나 개인용 치료기라고 하면 효능 자체에 의구심이 갖기 마련이라 당시 이 회장의 어려움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대전대'원광대 한방병원에서 임상시험을 했고 그 결과를 인정받으면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개인용 온열기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이 회장에게 '노인 건강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의학상을 수여해야 한다는 반농담성 얘기까지 유행했다고 하니 사업 초창기와 비교하면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
초기 제품은 온열기를 가방에 넣어뒀다가 치료할 때면 꺼내 사용하는 방식이었으나 수차례 보완과정을 거쳐 1990년대 후반 침대형 자동온열기를 내놓았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개인용 온열기의 효능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데다 소비자를 상대로 무료 체험관을 운영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효능을 직접 체험해보고 구입하고 싶으면 구입하라'는 방식의 마케팅이 요즘에는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로는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전국 400여 개의 대리점에 하루 평균 25만 명이 다녀갔다. 새벽부터 노인들이 대리점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는 노인을 우대하면서 상품을 파는, 가장 한국적인 마케팅 기법이다. 당시 기자와 함께 살던 외할머니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이 갑작스레 기억났다. 이 체험 마케팅은 경영학 논문에 자주 인용되고 연구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 회장은 많은 특허를 갖고 있는 발명가이자 혁신적인 마케팅 기법을 창안한 경영자로 남게 됐다. 직원들은 이 회장을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CEO로 평가했다.
◆업계는 구조조정 중
미건의료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년에 1만5천 대 이상 개인용 온열기를 팔았고, 제품을 구입하려면 한 달씩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영원한 호황은 없는 법. 2005년부터 비슷비슷한 제품을 들고 나온 회사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한때 80~90개의 회사가 난립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미건의료기는 대리점 수를 절반이나 줄였고 매출도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자신 밑에서 일하다 새로 회사를 차려 나간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이전투구를 벌이던 개인용 온열치료기 시장은 현재 구조조정 중이고 많은 회사가 퇴출됐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미래는 여전히 밝습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클수록 개인용 치료기 시장은 계속 각광을 받을 겁니다." 그는 요즘 외국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70여 개국에 대리점'지사를 개설했고 수출을 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700개 대리점이 있고 현지에서 온열기를 생산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늘 바쁘다. 해외출장이 잦고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는 매일 2, 3개의 대리점을 돌며 강연회를 가졌다고 한다. 나이를 감안하면 대단한 강행군이 아닐 수 없다.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으니 의료기 생산회사 CEO답게 하루 두 차례 개인용 온열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현재도 젊을 때처럼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모토로 내걸고 있는 '건강 100세'를 이루기 위해서도 열심히 뛰어야죠."
그의 고향은 포항시 장기면이다.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부산의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해야했고 현재는 사업체가 있는 대전에 살고 있다. 고향에는 형수님이 있고 부모 묘소가 있어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찾는다고 했다. "고향은 제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고향에 봉사할 기회를 만들 겁니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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