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시작과 끝, 희망을 말하자

얼마 전 새해의 다짐을 한 것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감할 때가 다가온다. 특히 시간의 빠름은 나이에 비례하여 느낀다고 하니 우리처럼 나이 들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것 같다. 성경에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하였는데 왠지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크게는 나랏일에서부터 작게는 개인의 일까지 시작은 크고 희망을 말하지만 끝은 미약하고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인간사에서는 사랑과 이해, 희망보다는 미움과 오해, 좌절이 더욱더 많은 것 같다. 정말 하찮은 일에 분노하거나 낙담하여 죽이거나 스스로 자기의 생을 거두는 경우를 자주 본다. 요즘 어려운 상황에도 여념 없이 생존해 가고 있는 필부필부들의 일상을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고 있는 화두에서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노력하면 무언가 성취되어야 함에도 도무지 이룸이 어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 미래가 불안하다고 푸념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주는 자보다 바라는 자가 더 늘어만 나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기들의 눈에도 갑갑하여 몇 자 글로 막연한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거가 끝난 지 언제인데 지금도 그 얘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철도 문제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다. 힘 가진 집단과의 대화는 도무지 뚫리지 않아 막혀 있고 그렇다고 신선한 어젠다를 내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지 못하고 있음도 답답하다. 막힌 자와 뚫지 못하는 자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백면서생인 내가 보아도 한국을 둘러싼 각국의 쟁패는 심각하다. Korea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3대 세습이나 패륜적 상황은 상상이 안 되고 부끄럽기도 하다. 건성박수가 심대한 문제라니 어찌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일어난 일이 될까. 이건 약과다.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경제대국 일본도 있다. 끊임없이 대륙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다. 참혹한 살육의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인 셈이다. 중국도 북한 편들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경제적 예속이 심하니 무어라 강하게 탓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러다가 우리가 혹시 정치적으로 섬나라가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미국에 의지할 수 없고 그렇다고 북한편만 들고 있는 중국에 추파를 던지기엔 더욱 그렇다.

송호근 교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구한말의 암울했던 시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정치'경제적으로 한국을 키운 20세기 패러다임은 끝났다. 산업화 세력이 자랑하는 성장엔진은 구닥다리가 됐고, 민주화 첨병이던 재야세력은 기득권집단이, 강성노조는 이익집단이 됐다. '사람투자'에서 '사회투자'로 전환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팽개쳤다. 연대와 신뢰를 창출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사회투자의 요체이거늘, 개인주의와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현실을 부추기고 방치했다. 양극화와 격차사회의 행진을 막지 못했으며, 사회조직은 승자독식을 허용했다." 그는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을 냉철히 인정하자고 한다. 미래가 막막한 사회는 시민윤리와 공동체정신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주장만이 넘치는 사회에서 누가 어렵고 못사는 사람들을 걱정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정말 없고 어렵다는 것일까. 수출은 늘고 외화는 쌓여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엔 오히려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세밑에 미담기사가 줄을 이은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든 우석훈은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일그러진 욕망으로 빚어진 시장만능시대를 지적하고 한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희망찾기를 제안한다. 돈으로 줄 세우고 비용효율로만 재단하여 사람을 제거한 탓에 혼란에 빠뜨렸다고 비판한다. 또한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고 근본을 외면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강요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하였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무엇이 진정한 가치이고 희망인지 찾아나서야 할 때이다. 새로운 꿈을 찾아야 한다. 희망을 말해야 희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천득염/전남대교수·건축역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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