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북부 한 산골에 사는 중년 여성 ㅇ씨는 언제부터인지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팠고, 월경도 불규칙하고 양도 엄청나게 많아져서 조금씩 어지러울 지경이 됐다. 읍내 의원에 갔더니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대도시에 사는 동생과 함께 대학병원에 갔더니 피검사'초음파검사 등 온갖 검사를 하고 MRI까지 찍게 됐다. 그런 과정이 다 끝나고 진단은 역시 읍내의원과 똑같이 자궁 혹이었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나왔다.
이때쯤 ㅇ씨는 생각보다 많은 돈을 쓰게 돼 가져온 돈으론 턱없이 모자라 동생에게 빌려야 했다. 자궁 혹도 무섭지만 돈이 더 무서워지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여성전문병원에 오게 됐고 개복도 하지 않고 복강경수술 후 닷새 만에 퇴원했다. 수술까지 받았지만 앞서 큰 병원에서 검사받는 데 쓴 돈의 반도 안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수술보다 첨단 의료기를 이용한 진단검사에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 결국 환자의 진을 다 빼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령 자궁 혹의 경우 비교적 경비가 저렴한 초음파검사로도 충분한데 보험이 안 돼 큰돈이 들어가는 MRI를 찍게 한다는 식이다.
심지어 암이나 생명에 위협적이 아닌 비교적 양성질환에도 초고가의 PET-CT나 MRI가 사용되고, 결과를 확인해 본다는 미명하에 치료나 수술 후에 다시 고가의 영상검사를 받게 한다. 물론 이를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숨겨진 병을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제한적이고, 많은 의심과 고민 끝에 이뤄져야 한다.
이러다 보니 현대(?) 의사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현대의 첨단 의료진단장비에 의존하게 됐다. 촉진'타진'청진에 의한, 그리고 많은 대화와 관찰을 통한 진단이 사라지고 있다. 환자와 의사 간의 인간성 교류에 의한 진단과 그것에 기초한 치료 방침의 결정이 아니라 기계적인 과정과 절차에 의한 의료행위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터무니없이 낮은 건강보험 수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낮은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비보험의 고가 장비를 쓰게 된다. 결국 의료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의사의 의료행위보다 의료기계에 의한 행위가 더 가치를 인정받는 기형적 의료가 대세가 돼 버렸다.
게다가 만에 하나 숨겨진 병을 처음에 놓치기라도 하면 큰 병원에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욕먹을 수 있으니, 바다에 투망 던져 물고기 잡듯이 온갖 최신 장비를 동원한 검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OECD 국가 중에 우리만큼 고가의 최신 의료장비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캐나다 전체에 20여 대밖에 없는 MRI가 대구에만도 수십 대가 있으니 말이다.
박경동 효성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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