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名 건축기행] <25>갓바위 뒷길 능성동 나무그림자집 (제13회 대구광역시 건축상, 은상

터 잡은 나무·바위 배려한 '절제 미학'…10년 풍화 거치며 자연 속 풍경으로

▷2004, 벽체 수직적 부담 줄여

이 주택은 대구와 경산의 경계, 갓바위 뒷길로 통하는 국도에서 살짝 접어드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다. 2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이곳에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이 집이 앞으로의 변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건축주의 일상과 그들이 바라는 공간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어려운 작업이었다. 대지 조건, 주변 상황, 법적 제한, 변화에 대한 긍정적 역할기대, 건축적 윤리 등과 일상, 감성과의 조절작업은 노동과도 같은 반복적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건축가의 회피할 수 없는 책무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노동 뒤에 오히려 일상을 뛰어넘는 헛된 개념적 의미추구에서 벗어난 건축적 순수가 있다고 믿는다.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소나무와 팽나무,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려 바위와 한 몸을 이룬 참죽나무, 이끼를 입으며 묵묵히 자리 잡은 바위들은 배치를 결정지은 중요한 요소다. 건폐율과 높이제한으로 기계실과 주차장 게스트룸은 반지하화 했으며, 주생활 공간인 주방, 식당, 오디오룸을 겸한 거실(6mx12m)을 일 층에 배치하고, 침실과 서재는 2층에 두었다.

각 실들은 계단을 중심으로 스킵플로어의 단면으로 막힘없이 연결되어 시각적, 청각적 소통이 자유롭다. 식당 및 거실과 연결된 외부데크는 기존의 바위, 나무들과 어우러지면서 그들에게 자연을 선물한다. 전체적으로 수평선이 강조된 가운데 진입부의 암시로서 경사로를 설치하였고 이는 경사진 진입도로의 연장선으로 작동하며 레벨의 변화에 따라 단계적 뷰를 만든다.

연못(13mx2.1m)과 움직이는 벽체는 수직적 부담을 줄이며 열림과 닫힘에 따라 주변과의 관계를 조절하며 중간마당의 성격에 변화를 주는 장치이다.

모노톤의 중간마당은 자연이 채워가는 빈 캔버스다. 수십 년 된 팽나무와 태양과 바람,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아침, 점심, 저녁에 다른 모습인 나무그림자를 담는 공간이다. 이 그림과의 만남은 이 주택의 가장 큰 행운이며 행복이다.

▷2014, 빛바랜 나무테이블의 정감

풍경이 된 건축 자연은 역시 너그럽다. 10년의 시간을 통해 부족한 건축을 하나의 풍경으로 오롯이 품었다. 중정의 팽나무와 때죽나무, 소나무 숲과 햇빛과 비와 바람은 젊은 건축가의 오만과 설익은 건축을 풍화시켜 자연으로 너그럽게 품고 있다. 이는 건축 당시 시공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베어내고 들어내지 않은 최소한의 배려에 대해서 역으로 자연이 되돌려주는 큰 배려이리라.

일상이 된 건축 중정은 건축주의 가족과 지인들이 자연과 소통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해질 무렵 앤틱랜턴이 불을 밝히는 빛바랜 나무테이블 위에는 아늑한 티타임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와 감사가 놓여 있다.

2개의 레벨로 만들어진 마당을 흐르는 13m 길이의 철제계단 끝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자연을 증폭시키며 사색게 한다.

10년의 세월을 지내며 이 감성적인 자연의 혜택과 그 건축적 장치들에 공감하며 살아가는 건축주와의 만남은 행운이며 건축가로서의 행복이다. 집주인의 오랜 손길이 느껴지는 목재 스피커와 1800년대 박스카메라, 저녁마다 불 밝히는 빈티지램프, 각양각색의 십자가, 켜켜이 쌓여 있는 장작나무.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은 생활이며 일상이다. 그래서 이 집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한다. 수십 년 된 나무들과 바람과 햇빛과 건축과 사람이 소통하며 자연과 함께 일상이 된다.

오늘 이 집의 목재 스피커에서 울리는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녹턴 NO.1이 팽나무가지를 가만히 흔들어 바람을 만들고 있다.

글'사진=건축사사무소 him 대표 건축사 백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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