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vs 이브 생 로랑

영화같은 삶, 다시 영화로 태어나다

실존 인물을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할리우드 여신에서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와 하이패션의 위대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인사들을 영화에서 만난다는 것은 일반적인 다른 극영화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들은 천재적 영감과 남다른 노력으로 원하는 바를 이룬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 각자의 능력에 감탄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살아왔던 시대의 공기를 함께 체감함으로써 당대 사회와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실린다. 이들 역시 한 사회의 일원으로 시대를 헤쳐 왔다. 당대 사회의 굴레를 극복한 그들의 슬기로움과 더불어 좌절의 순간들을 보며 다양한 인생사의 경험을 대리해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전 세계에 첫선을 보이며 화제를 낳은 작품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중 돌연 모나코 국왕과 결혼하면서 은퇴한 그레이스 켈리가 배우로의 복귀를 고민했던 몇 년간의 시기를 다룬다. 1950년대에 할리우드에 등장하여 메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여배우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그레이스 켈리는 우아함의 대명사였다. 그녀는 미국 필라델피아 부호 가문에서 출생해 1951년 '14시간'에 단역으로 캐스팅되어 할리우드에 데뷔한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서부극 걸작 '하이눈'(1952)에 게리 쿠퍼의 약혼녀로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거장 존 포드의 '모감보'(1953)에 대스타였던 클라크 게이블, 에바 가드너와 함께 출연하며 명성을 얻고, 골든글로브를 수상하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1954), '이창'(1954), '나는 결백하다'(1955)에 연이어 출연하며 켈리는 히치콕의 뮤즈로 떠올랐다. 1955년 '갈채'에서 빙 크로스비의 헌신적인 시골 아내 역을 맡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그녀는 돌연 모나코 국왕의 청혼을 받아들여 은막을 떠나게 된다.

할리우드 데뷔 5년 만에 모든 것을 성취한 그레이스 켈리의 왕비로의 대변신은 모든 소녀들의 로망이 될 만한 아름다운 동화의 결말인 듯했다. 그러나 프랑스 옆의 조그만 나라 모나코에서 일거수일투족이 호사꾼들의 잡담 대상이 되는 왕실 생활은 자유분방한 젊은 미국 여자가 감당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히치콕이 '마니' 시나리오를 들고 할리우드 복귀를 조심스럽게 타진하자,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의 작은 나라 모나코는 알제리 전쟁으로 위기에 몰린 프랑스 대통령 드골의 한마디에 나라의 운명이 뒤바뀔 일촉즉발의 위기하에 있었다. 그녀는 할리우드로 복귀하여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을 것인지 갈등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모나코 왕실의 위기와 긴박하게 맞물린다. 할리우드에서는 여신이었지만, 모나코에서는 이방인이며, 왕실에서는 가문에 어울리지 않는 되바라진 현대여성인 켈리의 위상은 날로 위태롭기만 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올리비에 다한은 '라비앙로즈'를 통해 에디트 피아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예술영화의 틀 안에서 멋지게 재현해낸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젊은 감독이다. 어느 한 여배우의 동화 같은 인생을 우아하고 화려하게 그려내기보다는, 숨 막힐 듯 꽉 막힌 공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했던 한 여성의 인내와 내면의 소용돌이를 그리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그 선택이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히치콕, 마리아 칼라스, 오나시스 등 유명 인사들과 엮인 에피소드는 파격과 자유의 시대인 1960년대를 향수를 가지고 회고하게 한다.

프랑스 영화 '이브 생 로랑'은 21세에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화려하게 패션 인생을 시작한 세기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일생을 다룬다. 신학교를 졸업한 수줍은 청년 이브 생 로랑은 천부적인 미적 감각으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된다. 몬드리안 그림을 드레스에 적용하고 여성정장에 최초로 바지를 도입했던 실험으로 명성을 드높였던 그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소심함은 자주 그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곤 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애인이었던 피에르 베르제가 유일하게 인정한 이브 생 로랑의 공식 일대기 영화이며, 77벌의 오리지널 의상의 사용, 작업실과 본사 최초 공개 등 여러 가지 화제를 몰고 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프랑스 개봉 시 '겨울왕국'과 정면 승부하며 대히트한 작품이다.

패션 디자인의 파격과 실험이라는 거대한 에너지와는 대조적으로 수줍은 내면을 가진 예술가는 늘 갈등하며 위태로웠다. 영화는 1960, 70년대 자유주의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진 자의 용기를 마주하며 큰 감동을 느끼게 한다. 평생을 모은 컬렉션을 사회에 기부한 진보주의자 예술가 커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한 영화 외적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브 생 로랑의 아트 의상을 구경하는 재미는 그저 눈을 호강하게 하는 덤일 뿐, 그의 인생철학은 훨씬 더 위대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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