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아염소산나트륨, 실수로 황산탱크에 주입

화학가스 유출 사고 왜?

50명의 부상자를 낸 대구 도금조합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였다.

차아염소산나트륨(NaOCl)을 차아염소산나트륨 탱크가 아닌 황산 탱크에 주입하는 어이없는 실수가 빚어지면서 염소산가스가 발생했고, 사고 처리에 나선 소방당국도 유해화학물질이 유출됐는데도 사고 발생 2시간 뒤에야 공장 내 직원 대피 명령을 내려 피해를 키웠다.

◆늑장 대응이 피해 키워

사고는 10일 낮 12시 23분쯤 대구 달서구 갈산동의 영남도금사업협동조합(3개 도금공장 구성'이하 조합) 내에 있는 차아염소산나트륨 탱크에 차아염소산나트륨을 넣으려다 엉뚱하게 바로 옆에 있던 황산 탱크에 이를 주입하면서 발생했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그 자체로는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나 황산 탱크에 있던 황산과 반응하면 염소산 가스를 발생시켜 호흡기 통증을 일으키고 장시간 흡입 시에는 호흡곤란까지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주입 전 이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서 많은 부상자를 낳았다. 경찰조사 결과, 주입 당시 조합의 폐기물처리 직원이 있었으나 탱크로리 기사에게 맡긴 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탓에 탱크로리 기사 라모(46) 씨를 비롯해 조합 안팎에 있던 근로자 50명이 염소산 가스를 마셔 호흡기 이상 증세로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 파티마병원, 대구의료원 등으로 옮겨졌다.

라 씨는 "탱크와 탱크로리 호스를 연결하고 30초쯤 지나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탱크 쪽을 살펴보니 노란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바로 밸브를 잠갔다"고 했다.

2t 저장용량의 황산 탱크에 당시 1t가량의 황산이 있었고, 여기에 차아염소산나트륨 100ℓ가량을 주입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만약 더 많은 양의 차아염소산나트륨이 주입됐다면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초동대응은 미흡하기만 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곧바로 현장에 도착했지만 사고 발생 15분이 지나서야 조합 입구와 사고 현장 반경 500m 지점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차량과 시민 통행을 막았다. 사고 발생이나 대피를 하라는 안내방송은 없었고 이 탓에 이 조합과 인근 공장 일부 근로자들은 사고 발생 사실조차 모른 채 작업을 하기도 했다.

소방당국 역시 잘못 주입된 차아염소산나트륨을 빼내는 작업과 부상자 이송에 집중한 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결국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나서야 3개 공장에 대한 작업 중단 조치를 하면서 전 직원 대피 명령을 내렸다.

환경청은 오후 4시가 넘은 시간까지 탱크 안에 남아 있던 차아염소산나트륨이 황산과 화학반응을 하고 있다고 밝혔고, 사고 발생 지점 1m 반경 안에서는 여전히 염소산 가스가 미량으로 검출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늑장 대처에 조합 안팎의 근로자들은 경찰'소방 출동 소리를 듣고 사고 현장 주변에서 마스크 등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이를 지켜보다 염소산 가스를 마시기도 했다.

◆과실 여부에 수사 집중

이날 오후 5시쯤 환경 당국은 사고가 발생한 황산 탱크에서 유독가스를 대부분 뽑아내 정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현장 조사를 벌일 예정인 가운데 경찰의 수사는 작업상 과실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탱크로리 기사 라 씨가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직접 주입한 것이 환경관리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라 씨가 독자적으로 주입했는지, 조합 관계자의 감독 아래 호스를 연결했는지를 따져 책임을 묻겠다는 것.

사고 당시 현장에는 조합 폐기물처리 직원 박모(55) 씨와 라 씨가 함께 있었으나 호스 연결과 차아염소산나트륨 주입에 있어 박 씨와 라 씨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박 씨는 "라 씨가 호스 연결 방법을 안다고 해 그가 직접 했다"고 한 반면 라 씨는 "이 조합 방문이 두 번째여서 담당자를 찾았다. 탱크와 연결된 호스가 3개 있어 어디에 연결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옥상에 설치된 염소탱크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조합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한 뒤 과실이 확인되면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이나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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