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두루미 내쫓는 낙동강

학(鶴)은 예부터 신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 고구려 두 번째 수도 국내성(지금의 중국 지안)의 사신총 고분벽화에는 학을 타고 나는 사람이 등장한다. 학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조상들은 병풍에 그리거나 옷, 베개 등에 수를 놓아 학을 가까이했다. 장수는 물론 행복과 풍요의 운이 찾아온다는 믿음에서였다. 학은 또 고고한 학자를 상징해 조선시대 문관들은 관복에 학을 수놓았다. 선비나 사대부들은 이런 학의 기질과 성품을 본받고자 직접 기르기도 했다. 송학리, 학선리 등 '학'(鶴) 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지을 만큼 학은 우리의 정신문화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새 가운데 하나다.

그 학이 바로 두루미다. 대표적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번식하며 지내다 추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온다. 대부분 한반도와 일본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올라간다. 두루미는 이렇게 매년 동아시아를 남북으로 2천~3천㎞를 오르내리며 살아간다. 두루미의 생존본능이다.

대구 달성습지와 구미 해평습지도 1980년대 이전에는 수백 마리의 두루미떼가 장관을 이루며 겨울을 나던 월동지였다. 달성습지 인근 주민들은 겨울철이면 밤마다 날아드는 두루미떼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잠시 쉬어가는 중간 기착지일 뿐이다. 습지가 줄어들면서 두루미들은 모두 일본으로 떠난 지 오래다. 일본 이즈미 습지평야는 흑두루미의 90%, 재두루미의 30~50%가 몰려드는 세계 최대 월동지로 변했다. 대부분 우리 땅에서 건너간 두루미들이다. 난개발로 습지와 모래톱이 사라진 탓이다.

그런데 사라졌던 두루미들이 요즘 순천만으로 몰리고 있다. 예전의 순천만은 두루미 월동지가 아니었다. 1996년에 처음으로 겨우 65마리가 관찰된 게 전부였다. 10년 전부터 개체 수가 늘기 시작한 것이 올해는 놀랍게도 1천여 마리로 불었다. 순천만 습지를 복원하고, 인근 농경지에 전봇대를 뽑아냈다. 농민들에게 보상을 해주며 친환경 농업을 실시하고, 사람과 차량까지 통제하는 순천시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가 마침내 빛을 본 것이다.

순천은 이제 천학(千鶴)의 도시로, 국내 최대 두루미 월동지로 탈바꿈했다. 순천 두루미들은 11월부터 3월까지 겨울을 나며 생태관광객 70만 명을 불러모으고 있다. 어렵게 만들어준 보금자리 대가로 두루미들은 매년 수십억원의 관광수입으로 되갚고 있다.

며칠 전, 국무총리실 산하 4대강 조사 평가위원들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수자원, 수환경, 농업, 문화관광 어느 것 하나 시원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일부 성과'란 표현도 내부 반발로 합의가 안 됐다니 세간의 눈총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물그릇은 키웠지만 이수, 치수, 환경, 개발이익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자리는 사람 대신 중장비에, 22조원의 사업비는 토건재벌 호주머니로 들어간 모양새다. 수자원공사가 떠안은 부채 8조원은 앞으로 15년 동안 물세와 혈세로 갚게 됐다. 4대강사업 논란에 '종지부'는커녕 앞으로 더 불거질 공산이 크다.

두루미가 찾아오는 낙동강의 생태환경을 보자면 4대강 공사로 더 악화됐다. '수심 6.4m의 낙동강'으로 백사장과 모래톱이 모두 사라졌다. 백사장과 모래톱은 두루미가 내려앉는 최적의 보금자리다. 올 들어 달성과 해평습지에서 잠시 기착한 두루미들은 모두 모래톱 위에 내려앉았다. 이 모래톱은 강바닥을 파낸 이후에 다시 퇴적된 것이다. 4대강사업 후유증으로 생긴 것이다. 다시 강바닥을 준설한다면 낙동강에서는 더 이상 두루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볍씨만 뿌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겁이 많은 두루미에게는 시야가 확 트인 넓은 백사장이 필요하다.

습지가, 두루미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전봇대 몇 개 뽑아내고 두루미를 불러 수십억원을 벌어들이는 순천만의 기적을 되돌아봐야 한다. 수조원을 들이고도 두루미를 쫓아낸 낙동강이다. 천혜의 습지를 가진 대구가, 구미가 돈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그릇만 키울 게 아니다. 서로 물싸움만 할 게 아니다. 두루미가 살 수 있어야 좋은 물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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