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등학교 졸업 후 '홈스쿨링'으로 고교 과정 마친 이준현 군

15세에 고졸 자격…비결은 엄마의 '밀착 지도'

초등학교 졸업 후 남들처럼 학교에 다녔다면 중학교 3학년의 나이지만 준현이는 홀로 공부해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마쳤다. 부모의 개인병원 한쪽 공간을 개조해 공부방을 만들었다. 어머니 박은희 씨는 아이의 공부를 위해 진료를 접고 3년간 전적으로 매달렸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초등학교 졸업 후 남들처럼 학교에 다녔다면 중학교 3학년의 나이지만 준현이는 홀로 공부해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마쳤다. 부모의 개인병원 한쪽 공간을 개조해 공부방을 만들었다. 어머니 박은희 씨는 아이의 공부를 위해 진료를 접고 3년간 전적으로 매달렸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준현이의 중졸 검정고시 성적 증명서.
준현이의 중졸 검정고시 성적 증명서.

중학교 배정을 받은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고 선언한다면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철렁하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이를 어르고 달래 '제도 교육'의 테두리 속으로 진입시키지 않을까.

이원식(47'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씨 가족의 자녀 교육 이야기는 평범의 사례에서 약간 벗어난다.

이 씨의 아들 준현(15)이는 2013년 2월 대구 중구 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맞벌이 의사 부부의 장남으로 초등학교 재학 당시 공부도 곧잘했고, 친구들과의 사귐에도 큰 문제가 없던 평범한 아이였다. 졸업을 앞두고 중학교 배정 발표가 났고, 아이가 배정받은 중학교는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혼자 가게 됐다. 입학식에 앞서 사전 소집일에 중학교를 한번 다녀온 아이는 그만 '입학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씨는 한 달 가까이 아이의 의사를 묻고 또 물었다. "비록 나이는 어려도 네가 사는 인생이다. 결정은 너의 몫이지만, 정 자신이 없으면 학교에 다녀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족회의 끝에 결국 준현이는 중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치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러한 결정에는 엄마의 의견도 배경에 있었다.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숙제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봤고, 매일 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면서 "중학교 과정을 빨리 끝내고 나머지 기간에 여유 있게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모가 선생님" 함께 출·퇴근하며 '열공'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그해 8월에 있는 중졸 검정고시 통과를 목표로 했다. 아이의 '전담 교사'가 된 엄마는 10여 년 동안 개업한 병원을 접어야 했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약 5개월. 중학교 교육 과정에 편성된 전 과목을 직접 가르쳤다. 아버지도 퇴근 후에 아들의 학업을 도왔다. 아버지가 모르는 수학 문제가 있으면 수학교사인 친구에게 물어서 가르쳤다. "아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부터 5개월 동안 병원 일 외에 사적 모임을 모두 끊었다"는 이 씨는 모자(母子)의 '고행'을 이렇게 배려했다.

홈스쿨링의 특성상 아이는 엄마와 함께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집중력 유지가 힘들었다. 그래서 학교 등하교처럼 아버지의 병원 출퇴근 시간에 가족 3명이 동행하기로 한다. 아버지의 개인병원 진료실을 개조해 한쪽에 아이와 엄마가 공부할 방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열공'이 이어졌다. 점심을 먹고 주변의 영어학원과 피아노학원 다니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아버지도 진료가 끝난 진료실에서 기다리며 함께 퇴근했다. 급기야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수성구에 있던 집을 병원 가까운 달서구로 옮겼다.

◇중졸 검정고시 만점…내친김에 '고졸' 도전

아이는 2013년 8월에 치른 중졸 검정고시에서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 응시생 중 최연소로 전 과목 만점을 얻은 것이다. 검정고시는 교과서 전체 부분에서 골고루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올 100'은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아이는 열심히 노력했기에 얻은 성과에 대해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부모는 "아이가 5개월간 힘든 과정을 잘 따라와 주어서 고마웠다. 이제 남은 2년 반의 시간은 아들이 좋아하는 피아노를 배우든지 책을 읽든지 알아서 사용하도록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시험 후 한 달가량을 '쉬던' 아이는 또 다른 선택을 했다. 엄마와 상의를 거친 아이는 내친김에 고졸 검정고시에 잇달아 도전하기로 한 것. 중학교 과정 만점을 받고 난 뒤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의견이 갈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고등학교는 정규 제도권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친구가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다. 공부 이외에도 학교를 통해 또래와 어울려 사는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우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자 출신의 할아버지도 적극적으로 만류했기에, 고졸 검정고시를 일단 치르고 제 나이에 맞춰 내년에 고교 입학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검정고시를 마쳐도 정규 고교에 입학 가능하다는 것이다.

준현이와 엄마는 중졸 검정고시 때와 마찬가지로 집과 아버지 병원으로 '등하교'가 다시 시작됐다. 1년 반가량의 시간을 '함께' 공부했다.

◇"친구 없어 외로웠다" 내년 정규 고교입학

초등학교 졸업 후 2년 넘게 '독학'한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준현이는 "친구가 없어서 한마디로 외로웠다. 초등 친구 몇 명과 문자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면서 "그러나 3년 중학교 생활을 포기하면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목표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가 낮에 학원을 가려고 밖에 나가면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고 했다. "학생이 이 시간에 학교 안 다니고 왜 다니느냐고 쳐다보는 것 같았다"고 말한 준현이는 실제로 다니던 수영장을 한 달도 못 가고 그만뒀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어머니 박은희 씨는 "검정고시를 하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이 낭만적이었다. 계획에 없던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면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면서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치는 게 예사였고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어느 한 쪽에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2인 3각 경기'였다고 표현했다.

◇"부모가 전적으로 매달리지 못하면 실패"

아이가 홈스쿨링을 한다는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자 지인들의 문의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머니 박 씨는 "집에서 하는 공부는 부모 중 한 명이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단언했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계획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주도학습 습관이 잡히는 것 같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잘못된 선택이 아니고, 좋은 결과를 끌어내려면 가족들의 관심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준현이는 지난달 12일 고졸 검정고시를 치렀다. 다시 한 고개를 넘었지만, 이 씨 가족의 '교육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석수 기자 s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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