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의성 금귀고리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가 있는데 신라라고 부른다…황금이 많다고 한다…신라의 주 생산물은 인삼, 안장, 도자기 등이다."(845년, 아랍지리학자 이븐 쿠드다지바) "신라라는 섬나라가 있다…사람들은 주로 흰옷을 입는다."(851년, 아랍상인 술라이만) "큰 섬나라 왕국인 신라라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공기와 강물은 한없이 맑고 신선하며 농토가 비옥하고 온갖 산물이 풍요롭다."(947년, 아랍인 마수디)

재독(在獨) 학자 김영자 교수의 '조선왕국이야기'에는 옛 아랍에 알려진 신라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비교적 비슷하다. 발굴된 많은 신라 금 세공품 등 유물에 비춰보면 그렇다. 최근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45호 고분의 금 알갱이 장식 가는고리 금귀고리와 접시, 항아리, 말갖춤용품 등 출토품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이번 귀고리는 경주 외에는 확인 사례가 없다고 한다. 발굴에 나선 (재)성림문화재연구원은 경주 천마총 출토품과 비슷하다고 했다. 무덤 주인공은 누굴까? 출토지가 의성 옛 읍성국가인 조문국(召文國) 도읍 터여서 상당한 지위의 인물인 듯하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귀고리는 6세기 전반 유행 양식이고 왕족 소유물로 추정했다. 신라 왕족 무덤이 경주에 몰린 것을 감안하면 의성에서 살다 죽은 왕족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이웃 군위군의 옛 기록을 보면 추리도 가능하다. 조선 영조 때 군위현감을 지낸 남태보(南泰普)가 남긴 적라지(赤羅誌)의 기록을 살펴보자. "옛날 계림(경주)이 나라의 서울일 때 벼슬하는 사람이 이 고을에 많이 살았다. 벼슬하는 사람은 붉은 옷의 도포를 입었다. 백성은 그 빛의 다름으로 구별했다. '비단옷 붉도다'라는 노래가 있었고 고을 이름을 이로써 비롯하여 불렀다고 이른다…지금에 이르러도 마을이름이 좌경(左卿), 우경(右卿)이라 함은 모두 옛날 벼슬하던 선비가 살았던 곳이다."

의성 조문국처럼 군위에도 군미국(軍彌國) 혹은 여담국(如湛國)과 등붕국(登崩國)이라는 옛 읍성국이 있었다. 물론 이들 읍성국은 모두 신라에 귀속돼 없어졌다. 신라 수도 경주는 영천~군위~의성으로 잇는 도로망을 갖췄을 것이고 옛 읍성국 터인 군위와 의성은 왕족이나 귀족이 살기에 적합했을 수 있다. 비록 조선조 때 이야기지만 남태보가 "영남 72고을에 오직 군위의 민속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 기록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무덤 주인공에 대해 진행될 전문가의 후속 연구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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