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대참사 여운 벗어나기도 전
역병 돌고 죽음에 대한 공포 휩싸여
공포는 가족·집단의 관점에 좌우돼
상존 위험을 사회로 확산시키는 경향
작년 이맘때 겪은 세월호 대참사의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 2015년 대한민국은 거센 파도와 풍랑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불경기에 연일 확산되는 중동 역병 카더라 통신까지 겹치는 통에, 사람들은 이제 복지는 고사하고 생존 유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마땅한 정보도, 치료제도 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에 사람들은 연일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공포가 어떤 대상을 향한 지속적인 두려움이라면, 두려움은 실체가 있는 위협에 대한 신경생리적인 반응이다. 진료 경험상, 객관적으로 타당한 위협이 50이라면 나머지 50은 생소함과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내면의 위협이다. 갑작스레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떻게 처신할지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평소 세상에 대한 태도 혹은 입장정리가 잘 안 되어 있다면 혼란의 시간은 더욱더 길어진다.
내면의 딜레마, 갈등이 두려움의 본질인 셈이다. 공포는 이런 내적 갈등에서 비롯된 두려움에 대처하는 수단이다. 위협의 정도가 불확실한 무언가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순기능은 물론, 자신이 진짜 두려워하는 내면을 못 느끼게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는 것이다. 대담하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내적 공포감을 자주 느낄 가능성이 더 크다. 요즘처럼 역병이 돌고 있는 시기에 수많은 이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일종의 가면이다. 죽음이란 모호한 대상으로 두려움을 옮겨서 생각하는 것이 원초적인 감정적 두려움의 본질과 직접 만나는 것보다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그 고통의 원인 대부분은 내면의 갈등이다.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불안 중에서 죽음 공포증과 가장 연관이 많은 정서 상태는 바로 건강 염려증이다. 이 또한 고전적인 분석에 따르면 본질적인 갈등을 위장하는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 카를 융은 말했다. 젊은 사람들의 노이로제가 삶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면 장년기의 노이로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고. 죄책감 또한 극단적인 재앙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의 원동력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이들이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부적절한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지금도 다수가 현재진행형으로 뼈아픈 애도기간을 갖고 있다. 죄책감은 집단적인 반응을 부추길 정도로 강력한 감정일 뿐 아니라 집단적 징벌욕구를 부추긴다. 그래서 페니켈과 같은 정신분석가는 자기 파괴적인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피학적 욕구를 죽음에 대한 공포의 또 다른 본질로 보았다. 미처 해소되지 못한 내면의 죄책감 때문에 생겨난 처벌 불안이 우리를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셈이다.
선천적인 관점에서 공포는 낯선 상황을 만났을 때 행동을 억제하는 성향이 클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크다. 후천적으로 공포는 자신이 속한 가족이나 집단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좌우된다. 어떤 학생은 또래 친구나 선생님께 무례한 말을 일삼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가 하면 쉬는 시간에도 오로지 공부만 하며 유달리 말을 아끼는 친구도 있다. 얼핏 보면 후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실은 '도긴개긴'이다. 이들 모두는 그저 집에서 지내는 모습 그대로 학교에서 생활한 것뿐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관계 양상을 반복함으로써 마음속 깊숙한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무의식적 전이(轉移)현상이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그런 태도가 지극히 의도적일 뿐 아니라 암묵적 합의 속에서 집단적 보편성을 띤다는 데 있다.
요즘처럼 불확실한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공자가 말한 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내 몸부터 먼저 지켜야 될지 아니면 남을 먼저 돌봐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인디애나대 민족학과 자넬리 교수의 관점을 빌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에 한정시킬 가치관을 거리낌 없이 직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장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상존하는 위험을 사회적 공포로 확산시킬 우려가 큰 것이다. 국민 전체가 한 번쯤은 곱씹어 볼 만한 주장이다.
김현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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