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실크로드의 산업스파이들

경북고·서울대 졸업. 전 뉴욕 부총영사. 전 태국 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경북고·서울대 졸업. 전 뉴욕 부총영사. 전 태국 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흠모의 대상이었던 비단·도자기 기술

中 신비스러운 보물 종교인들이 빼내

현대는 M&A·직접투자로 기술 퍼가

잘못 베낀 北 미사일, 떨어져서 다행

그 옛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렀던 사막과 초원의 길, 실크로드에서 문명 교류의 발자국들이 부단히 겹쳐질 때 세계는 중국의 신비스러운 하이테크 보물에 흠뻑 매료됐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비단이 그랬으며, 무명이 그러했고, 도자기는 흠모의 대상이 됐었다. 모름지기 선진 문화나 기술이라면 가진 자로서야 독점하고자 보호의 대상이 됐을 터, 못 가진 자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방하려는 훔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 이를 좋은 말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제2의 창조라며 에두르지 않았을까!

실크로드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은 무엇이었을까? 시베리아를 정복하며 세계 최대의 국가로 러시아가 탄생되는데 직접적인 동인이 됐던 담비, 족제비, 여우 등 모피가 그것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실크, 즉 비단이 그것일까?

아무래도 흉내 내기 어려웠던 제조법이 가미된 비단이 아니었을까 한다. 비단은 한때 금값 이상으로 거래됐으며, 로마제국의 재정까지 고갈시켰던 당대 최고의 상품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비단옷을 시시때때로 치렁치렁 휘감고 폼을 잡는 바람에 저 멀리 북쪽 런던에서까지 비단옷 패션으로 난리가 났었다. 유럽이 이역만리 실크로드의 수송을 거치며 비쌀 대로 비싸진 비단을 어떻게든 자체 생산할 수 없을까 꿈꾸지 않을 수 없었겠다.

중국은 중국대로 뽕나무, 누에고치, 그리고 비단제조법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던지, 중국과 로마 간 비단 중계무역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던 파르티아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었다고 한다. 비단은 중국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나무껍질에서 만들어진다고 말이다. 로마에서 비단을 직접 생산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겠다. 그러나 교통의 길이 트여 있는 이상, 진실은 퍼지게 마련이다.

551년 유스티니아누스 동로마제국 황제는 경교(Nestorian Church) 수사 2명을 중국에 보내 양잠-견직술을 몰래 배워오게 했다. 수사들은 대나무 지팡이 안에 누에고치를 몰래 담아 옴으로써 마침내 비단의 자체 생산이라는 로마의 염원을 실현시켰다. 이보다 앞서 5세기경 한 중국 공주가 타림분지 남단 호탄이라는 오아시스 소왕국에 시집가며 쪽진 머리 속에 뽕나무 씨와 누에고치를 숨겨 나가 바깥 세상에 퍼지게 했다는 설도 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문익점의 이야기는 어떤가. 이견(異見)들이 존재하지만, 1363년 그는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시 반출이 금지된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숨겨 왔다. 이런 기술의 이전이야말로 유럽에나 한반도에나 의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 산업스파이들의 명드라마라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유럽에서는 동인도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챙기며 수입한 중국 자기로 생활에 고급 취향을 창조하며 부를 과시했었다. 유럽에서는 18세기가 도래할 때까지 맑은 소리의 빛나는 중국 경질자기(hard porcelain) 제조기술을 가지지 못했다. 못 가진 쪽이 가만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예수회 신부를 산업스파이로 중국에 보내 그 제조법을 몰래 익혔고, 1712년 프랑스 예수회에 보고함으로써 유럽 자기들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실크로드의 최대 상품, 비단과 자기가 공히 종교인들의 산업스파이 노릇으로 서구에 기술이 전래 되었다는 역사가 범상치 않다.

과거 중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대단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시절은 바뀌었고, 붓두껍이나 지팡이에 몰래 담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놓고 직접투자함으로써 기술과 노하우를 막 퍼가는 무서운 시대가 되었다.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M&A 하거나 지분투자를 통해 소프트 콘텐츠, 경영술, 금융기법 등을 골라간다. 실크로드의 산업스파이들은 기껏 애교 어린 낭만이 될 만큼이나 세상은 무서워졌다. 그런데 말이다. 북한이 자랑삼았던 무수단 미사일은 온전히 기술을 담아오지 못했는지, 천만다행으로 자꾸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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