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인간답게 살기를 희망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다. 학교나 군대에서는 기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다음 학년 또는 계급으로 올라간다. 회사에서는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대리, 과장, 부장 등의 순서로 승진하고, 나중에는 사장까지 올라가는 신화를 달성하기도 한다.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는 기대가 없다면,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져 의욕이 저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합창을 보면 좀 다른 것 같다. 합창은 보편적으로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등의 여성 파트와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의 남성 파트로 나뉜다. 경우에 따라 여성 두 파트, 남성 두 파트로 나뉘는 4성부 합창이 이뤄지기도 하고, 남성 4부 또는 여성 3부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런데 낮은 파트에 있는 알토 단원이 높은 파트에 있는 소프라노로 옮겨가는 경우가 없고, 높은 파트에 있는 테너 단원이 낮은 파트에 있는 베이스로 옮겨가는 경우도 없다. 그 이유는 목소리의 특성을 기준으로 파트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악가는 성악을 시작할 때 고음에 적합한 목소리인지 아니면 중'저음에 적합한 목소리인지를 구별하고 공부한다. 물론 중간에 파트를 변경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처음에 결정한 대로 평생을 활동한다. 하지만 성악에서는 고음 파트가 더 좋은 것이거나 중'저음 파트가 안 좋은 것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소프라노와 테너를 더 많이 기억한다. 아마도 오페라의 주인공 역할을 주로 이 고음 파트에서 맡기 때문인 것 같고, 합창 때 멜로디를 주로 고음 파트에서 맡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아마추어 합창단 오디션에서는 분명 메조나 알토 목소리인데 소프라노를 시켜주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분들이 생기곤 한다.

합창에선 모든 파트가 중요하다. 고음만 있으면 너무 자극적이고, 저음만 있으면 웅성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음이라는 대들보에 중음이라는 튼실한 기둥과 벽체가 채워지고 고음이라는 아름다운 지붕이 얹어질 때 비로소 흔히 얘기하는 환상적인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파트가 없고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단원이 없는 것이 바로 합창이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직업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없어도 되는 그런 불필요한 직업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 살면서 그렇지 않은 대우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디 이젠 우리 사회에서 천한 직업과 귀한 직업의 구분이 없어지길 희망한다. 귀한 일을 하면서 돈만 많이 축적하며 인간이길 거부하는 사람보단, 힘든 일을 하지만 그 중요함을 인정받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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