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메랑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위한 14개조 평화 원칙의 하나다. 윌슨의 구상은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에 이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거부했다. 수용하면 식민지를 모두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원칙은 베르사유조약에서 패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식민지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변질됐다.

승전국의 이런 이기심은 훗날 엄청난 부메랑을 맞게 된다. 바로 전쟁으로 상실한 독일 영토는 물론 독일인이 다수인 다른 지역도 독일 영토가 돼야 한다는 히틀러의 요구였다. 그 무기가 바로 민족자결주의였다. 히틀러는 이를 내세워 전쟁 중 상실한 자를란트와 라인란트는 물론 오스트리아, 체코의 주데텐란트, 폴란드의 단치히 등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독일을 약화시키기 위해 휘두른 민족자결주의라는 무기가 이제는 영토 확장 야욕을 실현하려는 히틀러의 무기가 된 것이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더 큰 문제는 '유화정책'을 고집한 체임벌린 총리 등 당시 영국 정치인들이 히틀러의 요구를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국민이 쌍수로 환영한 독일'오스트리아 합병만 해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역사학자인 E. H. 카도 그랬다. 히틀러의 '민족자결' 주장을 지지했다. 그는 "베르사유 조약은 시대에 뒤졌으며, 독일은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체코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준 뮌헨회담의 굴욕에 대해서도 "평화적인 변화를 협상하는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북한이 문재인정부 출범 나흘 만에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함에 따라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가동하기도 전에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의 최대 가능 사거리는 5천㎞ 안팎으로 지난해 6월 발사된 무수단 미사일(3천500㎞)보다 크게 진전됐다. 이런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는 우리가 자초한 부메랑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자위적 조치라고 두둔한 노무현정부를 포함, 남한의 역대 정부는 북한의 속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대화와 지원에만 매달렸다. 이런 실패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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