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7>-엄창석

서석림은 솜을 받친 두툼한 두루마기를 입고 뱃머리에 앉았고, 계승은 돛대 밑 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횡목에 엉덩이를 걸쳤다.

"돛을 올릴까요?"

"올릴 거 없네. 물이 흐르는 데로 가게 둬."

사공 방씨는 배 꽁무니에 서서 긴 노를 좌우로 조금씩 틀며 배가 내려가는 물살을 자연스럽게 타도록 했다. 겨울이지만 눈이 많이 내려 수량은 풍부했다. 다행이었다. 수심이 얕으면 배 밑이 솟아오른 강바닥에 걸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얼음 같은 강물에 뛰어들어 고딧줄을 당겨야한다. 배에는 삼으로 엮은 굵은 고딧줄을 준비해 놓았다.

왜 갑자기 여행을 가지고 했을까. 남은 성벽을 마저 무너뜨릴 거라는 뒤숭숭한 소문들, 의병들이 대구를 치러올 거라는 다급한 이야기, 불이 번지듯 한인들의 땅을 먹어치우는 일인들, 화폐 교환으로 가진 돈이 쇳조각으로 변한 상인들, 계승이 혼자 맡은 이와세 상점에 불을 지르는 일까지. 도시는 곳곳이 불안했다. 이런 때에 서석림은 왜 한적한 강에다 배나 띄울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문진이 아뜩히 멀어지면서 인가(人家)는 보이지 않았다. 남으로 갈수록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하얀 산비탈 사이로 굽이돌아가는 강물은 푸른 거울처럼 투명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군락을 이룬 흰 미루나무가 맑은 강물에 길게 비쳤다. 흰빛을 눈부시게 발산하는 섬세한 가지들이 강물 속으로 거꾸로 뻗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수십 년 동안 이 강을 누벼서겠지. 계승이 보기에는 뱃머리에 앉은 서석림이 흡사 배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물살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장죽을 입에 물고 노를 잡은 방씨를 보거나 눈 덮인 강안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졌다. 서석림이 상선을 탄 게 20살 즈음이라던가. 계승이 태어나기 전이지만 당시 낙동강은 뱃전이 서로 부딪칠 지경으로 상선들이 붐볐다고 한다. 낙동강 삼각주인 명지도에서 안동까지 이어지는 수십 군데의 나루에는 수만 명의 보부상들이 집결했다. 상선에서 하역한 물품들을 내륙으로 옮기고 내륙의 산물들을 나루로 가져왔다. 강은 척추와 같았다. 강으로부터 굵고 가는 신경망이 큰도시와 두메산골까지 미세하게 뻗어 있었다.

서석림이 사문진과 개포를 중심으로 낙동강의 허리를 움켜잡던 1876년에 일본이 부산항을 열었다. 그간 막혔던 일본과 서양 물산이 낙동강으로 밀려들었다. 모든 나루에는 성냥, 손거울, 종이 같은 편리한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염미두(魚鹽米豆)에 한정된 보부상의 짐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서석림이 거느리는 보부상들이 일본과 서양 물건들을 각처로 뿌렸을 것이다. 철도가 들어서기 전부터 일상에 쓰는 매혹적인 물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을 것이다.

"임군, 자네 올해 몇 살인가?"

"스물여섯입니다."

"스물여섯......임오년(壬午年, 1882년) 생이군. 열 살 무렵에 뭘 했지?"

"저의 집이 달배인데 사문진 객주에 나가 심부름하거나 물동이를 나르고 아궁이에 불도 넣고......방우노릇 했습니다."

"사문진에서?"

"예......"

그저께 광문사 인쇄실에 들른 서석림이 탁자에 둔 교정쇄를 손으로 쓱쓱 넘기다 계승에게 나이를 물었었다. 멀리 개포가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어느 때인가, 사문진 아래인 개포 나루에서 서석림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사문진이나 개포에는 서석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번은 객주에 드나드는 여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개포로 간 적이 있었다. 화장품이나 옷가지 따위를 들고 그녀들을 따라간 것 같았다. 지붕을 갖춘 배였고, 같이 탄 십여 명의 여자들이 계승에게 화장함을 들라 해놓고 그의 고추를 만지며 까르르 웃어댔다. 개포 나루에는 소금배가 백여 척이나 몰려 있었다. 서로 뒤엉켜 강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11월이었다. 낙동강 어귀인 명지에서 가마솥으로 생산한 자염(煮鹽)이, 김장철을 앞두고 한창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시기였다. 이듬해 봄까지 사용할 소금도 이때 거래되었다. 소금은 식량과 다름없었다. 가령 들판에 있는 쑥도 소금이 있어야 절여서 먹을 수 있는 거니까.

거기서 계승은 소금 하역을 지휘하던 서석림을 보았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고, 붉은 천이 달린 긴 막대기를 허공에 그으며 소금배들을 질서 있게 도선을 시켰다. 계승은 말로만 듣던 서석림의 모습이라 어린 나이에도 감동에 젖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키가 큰 서석림 곁에서 그를 흉내 내며 짧은 막대기를 휘두르는 어린 아이 하나를 보았다. 마치 서석림을 축소시켜놓은 듯 자세마저 비슷했다. 그 광경은 퍽 인상적이었다. 조금 전에 가졌던 감동은 서석림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받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나와 도선과 장삿술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한다기보다 어떤 자부심을 가진 듯 당당했다. 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지시를 잊거나 틀리게 받아들이는 사공들에게 다시 지시를 하고 시정을 할 때까지 소리치곤 했다.

그 아이가 서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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