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시행 40여 일, 초기 준비 부족으로 혼란 빚는 '존엄사법'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된 지 40여 일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구축됐다. 하지만 시행 초기 의료 현장에서는 이런저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준비 부족에다가 제도상 허점도 불거져 벌써부터 법 개정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법 시행 이후 우리나라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택한 사람은 1천여 명이나 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존엄사를 택하는 사람이 한 해 1만 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등록한 사람도 3천 명을 넘어섰다. 시행 초기인데도 불필요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준비가 태부족인 상황이다.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놓거나 직원 교육을 실시하는 의료기관이 너무 적다. 대구의 경우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조직인 윤리위원회를 구성한 곳은 주요 대형병원 5곳뿐이다. 이 때문에 환자가 희망하는데 연명치료 중단에 제한을 받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해 놓았는데도 시스템 미비로 관련 정보를 공유하거나 조회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무엇보다 환자 대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가족 범위가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으로 돼 있는 현행 법 규정에 문제가 많다. 예컨대 의식을 잃은 고령자가 연명치료 중단을 받으려면 증손자 동의까지 줄줄이 받아야 하는데 의료인들은 이것이 현실성이 없다며 동의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들이 연명치료 중단에 몸을 사리는 분위기도 만연해 있는데 이 역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법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탓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누구나 인간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웠다. 국민들도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의료계는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정부도 제도 보완을 통해 존엄사가 정착되는 분위기를 확산시켜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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