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정 서근섭 교수 서화집(상·하)/ 서근섭 지음/ 이화문화출판사 펴냄
우리 전통적인 예술 양식인 서예와 문인화는 화선지(한지) 위에 침묵으로 말하는 먹을 위주로 고매한 인간 정신을 드러내 보이는 예술이자 도라 할 수 있다. 이 양식에는 절제에서만 발견되는 기하학적인 은유의 미학이 자리매김하며, 인간적인 이 미학에는 절제를 통한 균형과 조화, 투명한 빛이 중요한 미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서예가는 기하학적인 구도와 틀 속에 '마음의 그림'을 압축하고 절제해 그 나름의 빛깔로 형상화하는 예술가이다.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예술가의 경우 신비롭고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추구, 일상적인 경험의 공간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삶의 진폭을 넓히고 고양시켜주는 새 지평의 조형언어를 향한 꿈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다. 원로서예가 야정(野丁) 서근섭은 바로 그런 예술가이다.
◆반세기 서화세계의 변모 총체적 집성한 '서화집' 발간
서근섭 계명대 명예교수의 서화집(상'하)은 반세기 넘게 서예와 문인화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서화세계의 변모와 개성적인 예술적 성취 과정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상권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이태수 시인의 서문과 정상옥 전 동방대학원대 총장'이중희 계명대 교수의 글을 싣고, 1974년부터 2012년까지의 서화작품 도판을 연대순으로 담았다. 상권에는 또한 도판에 곁들여 권원순 미술평론가, 심재완 전 영남대 명예교수, 문종선 '서예문화' 발행인 등의 작품평을 실었다.
하권에는 그의 서화세계에 대한 민학림 중국향주미술가협회 주석'손병철 서예평론가 등의 글을 실었으며, 도판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추상회화적인 조형성으로 나아가는 현대적 감각의 독창적인 최근 작품을 실었다. 또한 정점식 전 계명대 예술대학장과 정태수 선생의 작품평, 신문기사, 그리고 인보와 참고도판 작품활동 기록 등도 담겨 있다.
이태수 시인은 서문에서 "그는 오랜 전통이 쌓이면서 굳어져버린 형식과 내용의 한계를 첨예한 감수성과 빼어난 에스프리, 치열한 실험의식으로 무너뜨리고 뛰어넘는 창조적인 조형언어들을 빚으면서 참신한 미학적 공간을 열어 보이는 매력을 발산한다"면서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현대적인 감각과 발랄한 상상력으로 국제적인 문맥에 놓일 수 있는 새로운 필법과 화법을 지향하면서 장르의 벽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거의 어김없이 전통적인 서예와 문인화에 뿌리를 두면서 그 정신의 깊이와 높이에 맥을 대는 양면성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고 평했다.
야정은 "지금껏 해온 작업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편집을 해놓고 보니 아쉬운 감이 든다"면서도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작품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전통에 뿌리 두면서 현대회화 접목…독창적인 세계 구축
전통서화로 출발한 그의 작품은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며 새로운 길 트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근래의 작품은 화선지와 안료뿐 아니라 천(광목)과 다양한 물감 등 새로운 재료를 끌어들였다. 특히 최근에는 회화의 추상표현주의 기법이나 설치작품과 같이 평면을 일탈해 입체성으로 그 영역을 과감하게 확대하는 파격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 때문에 그의 문인화는 단순한 선과 과감한 붓 터치 등으로 대상의 내면을 형상화하거나 대담한 구도, 생동감 넘치는 필획이 두드러지는 비구상 작업으로 비약되기도 한다. 서예작품 또한 문자와 회화의 접목, 문자의 상형에로의 회귀나 그 조형성의 극대화로 나아가는 새로운 화법을 펼쳐 내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그의 실험은 소밀, 고졸, 균제 등 기존에 중시돼온 개념을 뛰어넘기 시작했으며, 재료의 다양화를 통한 회화성 떠올리기로 변모하면서 점차 콜라주나 흘리기 등 현대회화의 기법들이 구사되고, 전통적인 문인화와 현대적인 문인화가 공존하는 화면, 구상화와 추상화가 공존하는 화면, 서예와 회화가 한 공간에 표현되는 화면을 함께 끌어안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서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선친 죽농 서동균 지도로 시화 입문
야정은 선친 죽농(竹農) 서동균 선생의 재능을 타고나 그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지도를 받았고, 그 예술혼을 이어받았다.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까지 선친으로부터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며 '따라하기'(전수)에 무게를 싣는 한편으로 안진경, 구양순, 저수량, 육조의 해서와 왕희지의 행서 등을 두루 익히고 섭렵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석고문' 등을 통한 전서, '장천비' '사신비' '조전비' 등을 통한 예서 연마에 매진했다. 선친의 지도에 힘입어 이런 힘든 과정들을 거친 그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각광받기 시작했다. 1978년 선친이 별세한 뒤 그는 그동안 천착해온 고전에서 자신의 세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초서와 갑골문, 금문, 청대 하소기의 예서와 행서 등 한문 오체의 빼어난 개성적 작품까지 연마의 폭을 넓혔다. 사군자, 산수, 인물, 기명절지 등에 이르는 표현기법을 갈고닦았으며, 국전 등을 통해 서예가로 지명도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부터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는 서예와 문인화를 발표해 이 분야의 개척자로 떠오르는 한편, 파격적인 구도와 죽농의 영향을 넘어서는 대범한 필획 구사 등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일궜다.
◆후학 양성과 서단 발전에 이바지
야정은 후학 양성과 서단 발전에도 이바지해왔다. 1992년 계명대에 서예과가 개설되면서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으며, 같은 대학교 예술대학원에 서예 전공을 신설(미술학과장)해 100여 명의 석'박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출범한 교남서화연구회의 후신인 영남서화회를 주도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계승해 이끄는 죽농서단 이사장으로서도 40년이 훨씬 넘게 활약해왔다. 1923년 석재 서병오가 개설하고 죽농 서동균이 운영해오던 영남서화원을 1973년부터 맡아 지도'운영해 왔다. 2009년에는 한국 서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 최초로 동방대학원대학교 서화심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373쪽)'하(269쪽), 2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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