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조용필, 가요계 정상에서 반세기

歌王, 끝없는 도전

벌써 50년. 조용필은 그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무대 위에서 팬들을 만나고 신곡을 발표하며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불리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앞서 나훈아와 이미자가 먼저 50주년을 맞이했고, 54년에 걸쳐 가수로 활동하다가 은퇴 선언을 한 패티김도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대한민국 최고라는 말을 듣던 가수들이다. 하지만 조용필은 그 굉장한 이들과의 비교에서도 단연 우위를 차지한다. 시대의 대중 정서를 이해하고 각 장르의 장점을 포용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음악을 만들어냈던 인물. 음악적 성취를 인정받은 것뿐 아니라 톱스타의 위치까지 유지하며 70세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새 앨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적어도 국내에는 단 한 명뿐인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대형 종합운동장 특설 무대 객석을 매진시키는 가수 역시 조용필뿐이다. 지난 12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조용필의 50주년 기념콘서트 '땡스 투 유' 첫 공연이 열렸다. 쑥스러워 50주년 자축을 망설이고 있던 조용필이 다시 한 번 팬들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50주년 맞아 음악인생 재조명

조용필 50주년 기념콘서트 '땡스 투 유'는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의정부, 제주 등 전국을 돌며 진행된다. 현재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가 주축이 돼 공연 외에도 조용필을 재조명하는 각종 행사와 이벤트 등을 기획하고 있다. 앞서 조용필은 50주년 기념 공연 등의 실행 여부를 두고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단 시작하면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답게 '확실한 팬서비스'를 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콘서트에 앞서 진행된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조용필이 직접 밝혔듯이 이미 새 앨범 작업을 하고 있으며 6, 7곡 정도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된 상태다. 하지만 앞서 19집 정규앨범 '헬로'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이를 넘어설 정도의 퀄리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선뜻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50주년 기념 콘서트 일정이 확정된 후부터는 공연만 바라보며 신곡 작업도 중단됐다.

간담회에서 조용필이 밝힌 신곡들의 분위기는 미디엄 템포의 곡이다. 요즘 세계 음악의 주를 이루고 있는 EDM 기반의 빠른 곡들로, 사실 국내에서는 조용필 또래의 어떤 뮤지션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라 더 놀랍다.

이미 조용필은 2013년 발표한 19집을 통해 브릿합, EDM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젊은 음악을 만들어 냈다. '바운스' '헬로' 등으로 잘 알려진 19집은 이 두 곡 말고도 듣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 만한 수준급 완성도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젊은 세대의 귀에 '헬로'와 '바운스'를 부르는 조용필의 목소리와 창법이 낯설게 들렸을 수도 있다. 록과 소울, 심지어 창까지 섭렵한 조용필의 창법이지만 EDM 사운드를 입힌 곡에서 흘러나오는 젊은 팝 가수들의 목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초 '헬로'와 '바운스'가 발표됐을 때 기성세대 팬들이 열광했던 것과 달리 젊은 층에서는 간간이 '어색하다'는 평가가 나오곤 했다.

실제로 필자 주변에 있던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리스너들이 보여줬던 반응이 그렇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은근히 조용필이 추구한 '젊은 음악'에 적응 못 하던 그들이 막상 19집 앨범 전체를 듣고 난 뒤엔 평가를 달리했다는 사실이다. 발라드 넘버 '걷고 싶다'의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사운드,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가사가 가진 정서를 최대치로 살려내 전달하는 조용필의 목소리, 록 기반의 사운드에 팝의 색깔을 익힌 경쾌한 곡 '충전이 필요해' 등 앨범 전 곡을 들은 필자의 '젊은 지인'들은 다시 한 번 '헬로'와 '바운스'를 듣고 그 후에는 조용필이란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겠다는 말을 하게 됐다.

◆한국가요의 퀄리티 업그레이드시킨 인물

이처럼 조용필은 일단 음악을 접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뮤지션이다.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빅 히트와 함께 인기가수 대열에 올랐으며 이어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정규 1집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톱스타가 된 인물이다. 지금처럼 컴퓨터를 통한 체계적인 집계 방식이 없었던 시절이라 비공식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당시 조용필 1집은 국내 첫 밀리언셀러로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수록곡 전체 히트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출발선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조용필이 당시 활동하던 타 가수들과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음악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트로트, 포크, 록 등 몇 안 되는 특정 장르가 위세를 떨치던 당시 가요계에서 가수들도 역시 한 장르를 자신의 고유 색깔로 만들어 이미지메이킹했지만 조용필은 같은 길을 가지 않았다.

다시 데뷔 당시로 돌아가 보자. 조용필은 기성세대들의 정서를 반영한 트로트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국민적 인기를 얻더니 후속으로 클래식 느낌의 고급스러운 '창밖의 여자'를 통해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같은 앨범 안에 들어있던 '단발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신시사이저의 전자드럼 소리가 가미된 흥겨운 디스코 리듬에 가성을 사용한 경쾌한 창법으로 젊은 층을 사로잡은 곡이다. 조용필 이전에는 가요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시도였다.

그 뒤로도 조용필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적 도전을 그치지 않았다. '허공' '친구여' 'Q' '그 겨울의 찻집' 등 성인 취향의 대중적인 발라드를 내놓는가 하면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등 강한 록 비트에 댄스 리듬이 가미된 곡과 '꿈' '추억 속의 재회' '어제 오늘 그리고' 등 얼터너티브 록 장르 등을 병행하며 대중성과 음악성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성공을 거뒀다. '바람의 노래'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 지금 젊은 세대까지 모두 알고 있는 명곡을 내놨으며 그 와중에 완벽한 공연을 추구하며 꼼꼼하게 준비해 무대에 올랐고 또 특정 장르의 성공에 함몰되지 않은 채 새로운 시도를 이어왔다.

서울에서 열린 50주년 기념 콘서트에는 비가 쏟아져 4만5천여 명의 관객이 우비를 입은 채 공연을 지켜봐야 했다. 총 일곱 번이나 열린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에서의 조용필 콘서트는 세 번이나 빗속에서 진행됐다. 그럼에도 흰머리에 주름진 외모를 가진 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조용필과 함께했고 이번 공연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용필 역시 팬들을 걱정하며 빗속에서 함께하는 이들에게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화답했다. 콘서트장을 찾아온 오래된 조용필의 팬들에게 그 자리는 잠시나마 과거로 회귀하는 타임슬립의 장이었으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마음속의 영웅과 함께하는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다.

TV 프로그램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던 조용필이 최근에는 이례적으로 KBS2 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해 자신의 노래를 열창하는 후배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50주년이란 타이틀로 인한 지인들의 압박에 못 이겨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출연을 결심했을 텐데 지켜보는 팬의 입장에선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반세기 동안 한국가요계의 정상에 서서 성장을 이끌고 그 역시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인물. 그 음악적 성취와 기여도는 세대가 바뀌어도 꾸준히 알리고 조명할 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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