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북유럽식 '우리가 남이가'

북유럽 복지 설계 핵심은 시민책임

놀고먹는 복지 아닌 근로'납세 중요

우리에게 부담 공론화 필요한 시점

비용 설득에 당당한 선거후보 기대

'국민의 집'(Folkhemmet)은 1928년 등장한 스웨덴 복지의 상징어이다. 국가는 하나의 가정이고 국민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의미이다. 같은 시기 덴마크에서는 '국민을 위한 덴마크'(Danmark for Folket)가 경제난 극복과 복지체제 형성의 정치 모토로 활용되었고, 노르웨이에서는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는 구호가 선거전을 달궜다. 이들 모두 이를테면 북유럽식 '우리가 남이가'이다.

그러나 지향점은 한국에서와 달랐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책임과 의무, 비용부담을 같이하자는 독려였으며 특정 집단 구성원끼리 혜택을 보자가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약속 대신, 근로와 높은 세금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설득했다. 2005~2013년 노르웨이 노동당의 선거 공약은 '세금을 낮추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연이어 집권에 성공했다.

약 100년 전, 복지제도를 설계하면서 북유럽의 각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문은 시민책임이었다. 복지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일반 시민이다. 정치권은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에 솔직했고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일을 하고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들에게 복지는 처음부터 공짜가 아니었고 의존이 아니었다.

오늘날 북유럽 복지가 변화하는 이유는 이런 전통가치에 익숙지 않은 이민자난민 출신 인구가 20~30%에 이르기 때문이고 이들을 통합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데 시장 원리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등록금은 무료이고 부모를 떠나 생활하는 대학생들은 매월 100만원까지 장학금을 받는다. 개인 의료비가 연간 30만~40만원 넘어가면 그 시점부터 사회구성원은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그 대신, 일을 할 수 있는 한 어떤 일이든 해야 하고 소득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는 것은 이들에게 상식이고 윤리이다. 최근 덴마크에서는 이런 가치를 '사회민주주의 DNA'라고 부른다. 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책임과 기여를 강조한 사회민주당은 6개월 전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 얘기를 해보자. 한국 복지 프로그램의 원산지는 대부분 유럽 내지 북유럽이다. 그러나 외국산 복지제도가 수입되면서 기본 취지와 중요한 사용설명서가 빠졌다. 정치권은 예산 문제를 솔직히 거론하고 국민을 설득하며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는 정공법을 놓쳤고, 시민들은 근로와 납세가 권리이며 복지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이해할 기회가 없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복지는 정치인들의 선심이 되었고 어느새 공짜처럼 여겨지고 있다. 부족한 재정으로 공급되는 복지서비스는 시장서비스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역대 정부는 앞다투어 복지의 혜택만 강조했고 덕분에 재정적자는 이리저리 떠넘겨지고 있다. 미래 세대에 적자를 넘기는 건 많은 복지 프로그램에서 상습이 되었고 누리과정사업(3~5세 무상보육사업)에서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을 미루는 불상사도 있었다. 과거 의료보험제도에서처럼 무리하게 낮은 수가를 책정하여 그 간극을 '약가 마진'(리베이트)의 불법 재원이 메우도록 방기한 전력까지 있다.

가장 아픈 사실은 납세자들이 책임과 의무에 당당한 시민이 아닌, 정부에 계속 선물을 기대하고 조르는 의존인처럼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복지 재정을 전담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혜택에 앞서 돈 문제와 내용을 먼저 고민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선거철이다. 이제는 복지사용법을 바꿔볼 때도 되었다. 자기 돈을 쓰는 양 해주겠다 생색내는 후보 대신, 비용을 공론화하고 감당하자 설득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등장해주기를. 우리 모두가 남이 아니며 필요한 부담은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책임시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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