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오만과 편견

정치의 계절이다. 굵직한 역사적 기념일들이 5월에 몰려 있기도 하고, 북핵을 둘러싼 변화무쌍한 외교전의 기운은 출근길에 정당을 상징하는 색의 옷을 입고 한 표를 호소하는 후보들의 정성을 덮고도 남는다. 지방자치 선거는 교육, 의료, 환경과 같은 생활에 밀접한 이슈들이 부각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OECD 국가의 보건의료 지출은 GDP 대비 10%에 이른다. 집행 단위도 국가보다는 지방 자치 단체일 가능성이 높아 유럽의 지방 선거에서는 보건의료가 중요한 쟁점 사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 주요 정책 과제로 다루어지곤 했다. 정책의 변화는 의사들의 수입과 취업, 그리고 전공의 수급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의사들이 다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다.


정치는 어떨 때는 교묘한 장치가 숨어져 있는 하나의 기획 영화 같기도 하다. 또 어떨 때는 마초같은 힘으로 전체를 뒤집어 버리는 야수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일개 의사로서는 간단한 논평조차 버겁다. 하지만 의사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료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질병이 신으로부터 받은 형벌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고대부터, 정치적 혹은 종교적 지도자들은 치료자임을 자인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히틀러조차도 치료자를 자처하였다. '하일, 히틀러'에서 '하일'은 영어 '힐링'과 동의어다.


이런 전통은 전후 20세기 후반 정치에서도 이어진다.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여서 굵직한 이슈가 없을 경우 정치는 의료를 불러내게 된다. 이것은 의료의 숙명이다. 정치, 종교, 그리고 자본 등 세 점을 이은 삼각형 내에 의료는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의료보험을 도입하면서 처음으로 정치에게 불려갔고, 의약분업을 하면서 또 한 번 불려갔다. 의약분업 당시에는 그 만남이 좋지 못했다. 파업, 사직서 제출, 수업거부 및 집회의 모습으로 정치와 만났다. 서로 상대의 오만을 지적하는 논변을 설파하였고, 편견은 20년간 지속되었다. 의료 수가, 급여 범위 선정, 병원의 지배구조 설정 등은 끝을 낼 수 없는 줄다리기 게임이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정치적 갈등의 고조는 정치와 의료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의료계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기도 한다. 문제는 갈등을 해결할 때마다 나오는 정책이 각 과의 흥망성쇠에 심대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외과계가 힘들기도 하고, 산부인과 전공의가 급감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과는 폐과 직전으로 몰리기도 하다가 반전을 만나기도 한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두 주인공은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에 대해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하지만 의료와 정치에서는 쉽게 결말이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동화에서는 결혼이 결말이지만 현실에서는 결혼이 또 다른 시작일 뿐이므로.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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