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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아침 한때/ 이태수(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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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한때

이태수(1947~ )

앞산에서 뻐꾸기 울고 아침이 온다

창문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그레고리오 성가

갤 듯 말 듯 찌푸린 하늘에

낮게 떠 있는 구름이 성스러워 보인다

간밤에는 악몽에 시달렸으나

꿈 깰 무렵에야 황감히 받아먹은 만나

낯선 광야에서 헤매던 내가

환한 얼굴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일까

멧새 소리도 유난히 밝다

트릴 리듬을 타기라도 하듯이 구름은

내리는 햇살과 어우러진다

더욱 성스러워 보이는 앞뜰의 산딸나무

심금을 울리던 성가가 멎어도

음반은 여전히 돌고 있는 것만 같다

―시집 '거울이 나를 본다' (문학세계사, 2018)

그레고리오 성가가 들려오는 성스러운 아침이다. 천주교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로 인해 성스러운 아침을 맞이하는 주인공은 낮게 떠 있는 구름, 앞뜰의 산딸나무는 물론이거니와, 밝고 경쾌한 아침을 여는 뻐꾸기 울음과 멧새 소리, 높고 빠른 리듬을 타는 구름과 햇살 모두 빼놓을 수 없다. 밤새 악몽을 꾸다가 여호와께서 주신 광야의 양식 '만나'(manna)를 만나고서 갓 깨어난 나도 성스러운 얼굴로 성스러운 아침을 맞는다.

내친김에,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나무라는 산딸나무에게로 다가가 두 팔 벌려 공중 높이 매달려 보고 싶은 아침이다. 성가가 멎어도 음반을 돌리는 신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아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아침이다.

시력(詩歷) 45년, 이상 세계 꿈꾸기와 그 변주를 추구해온 시인! "그의 언어는 성스러운 기도이자, 인간의 언어이면서 끊임없이 신성을 환기시킨다"(김주연)는 오늘의 신문 기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아침이다.

장하빈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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