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나는 브라질 최남단 포르투 알레그리의 어느 골목에 서 있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이 남반구에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케 했다. 그 며칠 전까지 머물렀던 미국 마이애미의 찌는 듯한 날씨와는 확연히 달랐다. 축구 국가대표팀을 따라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행복의 항구'라는 도시 이름 덕분인지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우리는 예선 2차전 무승 징크스를 깨지 못한 채 알제리에 무참히 졌다.
얼마 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청맹과니인 내 예상은 빗나갔다. 단순히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한쪽이 완전히 무너진 운동장'이었음을 몰랐다. 자치단체장·국회의원은 그렇다 쳐도 지방의회 구성은 '투표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대선과 총선 사이에 놓인 지방선거는 원래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번엔 보수 야당을 심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돌개바람이 몰아쳤다. 다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민심 외면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1년 전 대선에서 완패했던 자유한국당에 반격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선보인 비디오 판독(VAR)처럼 화면을 잠시 뒤로 돌려보자. 진보 진영의 갑질 외유·미투·드루킹 의혹, 여배우 스캔들에 위태로운 경제까지…. 그럼에도 한국당은 골문을 정확히 겨냥한 유효 슈팅을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막말 공세는 몸부림치면 칠수록 숨통을 더욱 죄어오는 올가미였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나 표심은 디테일 대신 '반성'이란 큰 그림을 원했다.
지난 2월, 나는 이 지면에 '리중딱 한야딱'이란 어쭙잖은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고백건대 '한국당은 야당이 딱'이란 의미로 적은 '한야딱'은 '한쫄딱'이었어야 했다.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아예 문 닫을지도 모르니 '한궤(멸)딱'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6·13 대첩'을 거둔 여당도 자만할 일은 아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뤄낸 성과라기보단 상대의 헛발질에 따른 반사이익이 컸다. 옛말에도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水可載舟 亦可覆舟)고 했다.
정부·여당이 '보수 탄핵' 이후 해야 할 일은 성급한 샴페인 터뜨리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청와대·내각이 아주 잘해준 덕분"이란 선거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취임 1주년에 밝혔듯 "음, 많이 달라졌어. 사는 게 나아졌어"란 말이 들려야 한다. 첫걸음을 뗀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나라다운 나라, 특권 반칙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날지 못하는 앵무새 카카포(Kakapo)가 멸종 위기에 놓인 건 역설적이게도 천적이 없는 탓이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은 공대를 졸업했다. 27세에 창업했지만 손익계산서나 재무제표도 못 읽는, 경영에는 까막눈이었다. 그런 그가 새 사업에 진출할 때마다 고민한 것은 '동기가 선한가?' 이 한 가지였다. 어쩌면 나라를 경영하는 위정자들의 숙제도 이뿐이지 않으랴. 국민을 위한 일인가? 나를 위한 일인가? 손익계산, 전략전술 따윈 이참에 버리자.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고상한 철학까지 들먹거리지 않아도 된다. 약간 수준 높은 인생관만 있으면 된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0년 4월 15일에 치러진다. 앞으로 665일 남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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