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모병원에 근무할 때 점심 먹고 나면 마땅히 갈 때가 없었다. 1960년대 명동에는 내무부, 국립극장, 증권거래소, 중앙극장, YWCA, 백 병원, 성모 병원, 상업은행, 미도파 백화점등이 있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넥타이 부대 중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축이 자주 찾아가는 곳은 '청자'나 '본전' 다방이었는데 이곳의 음악은 신나고 역동적이었다. 조용한 음악 감상파 중에 재즈나 팝송 좋아하는 이들은 '타임'다방에 주로 갔었고 클래식 파들은 '아폴로'나 '설파'다방이었다. 설파다방에는 중앙에 칠판이 놓여 있었는데 분필로 노래곡목을 가득 적어 두었다. DJ 없이 연이어 노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자는지 음악을 감상하는지 팔 장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가끔은 서서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교향악을 지휘하는 기인(奇人)도 있었다. 퇴근길에는 50년대 중반 서울에서 최초인 전문 음악 감상실 무교동 '세시봉'이나 종로 2가 '디쉐네', 미도파 옆의 '라 스카라', 화신 옆의 '메트로'등을 많이 찾았다. 클래식은 종로의 '르네상스'가 인기 있었다. 음악애호인 사이에는 세시봉은 양아치들, 르네상스는 신사가 가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문 음악 감상실의 탄생지는 대구다. 군위출신 이창수가 카페 '백조'다방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악기점을 하며 음악에 대한 조예를 넓히던 중 1946년 26세에 향촌동 지하실에 SP판 500여장과 축음기 한대로 '녹향'이라는 음악 감상실의 문을 연 것이다. 외롭고 가난한 예술인들과 삶에 찌든 시민의 애환을 품어주는 둥지 역할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양명문의 '명태'라는 시도 녹향에서 탄생한다. 이창수는 귀한 판을 만나면 시가보다 몇 십 배나 더 비싸게 주고도 구입하며 감상실을 키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누구나 쉽게 음향기기를 갖게 되고 음악 감상의 형태도 달라지자 녹향은 쇠퇴의 길로 걷는다. 1980년대는 하루에 한 사람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2011년 이창수는 세상을 떠나고 셋째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지만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70년 동안 10여 차례나 이사 다니던 중 다행히 대구시 중구청에서 향촌문화관에 공간을 마련해주어 역사의 현장은 지워지지 않고 겨우 유지되고 있다.
1957년 5월 김수억이 대구에서 음악 감상실 '하이마트'의 문을 연다. 이북에서 피난 온 김수억이 대구에서 모은 수많은 LP판으로 녹향과 쌍벽을 이루며 한 때 하루 400명이 줄을 서 입장하던 유명 음악감상실을 만든다.
그가 세상을 떠나며 딸 김순희에게 운영을 계속하라며 유언을 한다. 세상이 변해 음악 감상실을 찾는 사람은 없어져 갔다. 하지만 김순희의 집념은 하이마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1999년 프랑스 리용 국립고등음악학원을 최우수 졸업한 오가니스트인 아들 박수원을 귀국하게 하여 감상실을 계속하게 한다. 현재 하이마트는 대구백화점 부근에 있는데, 김수억의 딸 김순희, 외손자 박수원과 피아니스트인 그의 부인 그리고 손자 4대가 그곳에서 음악활동을 한다.
하이마트는 감상만의 장소가 아니고 유명 음악가들을 초청해 강연과 연주와 발표회도 하는 등 폭넓은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 남아 있는 단 두개의 전문 음악 감상실이 대구에 이렇게 탄생했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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