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폭정을 바로잡으려 했던 문경 출신 홍귀달 대감을 아시나요?"
서슬 퍼런 연산군 시대에 그의 10가지 잘못을 당당하게 지적했던 문경 출신 문광공 홍귀달(1438~1504) 대감이 재조명받고 있다.
그의 사상과 학문을 주제로 한 제19회 경북역사인물학술발표회가 최근 문경영강문화센터에서 열렸다.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회장 조용하)가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문경문화원(원장 현한근)이 후원한 이날 발표회는 고윤환 문경시장과 고우현 경북도의원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과 300여 명이 넘는 시민과 부림홍씨 후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문장 실력이 뛰어났던 홍귀달은 세조 때 과거에 급제했고 성종 때에는 대사성, 대제학, 이조 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연산군 4년 무오사화(戊午史禍) 때 좌참찬이었던 홍귀달은 연산군의 10가지 폐단에 대해 모두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당했다.
당시 연산군에게 비판적 상소를 올린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와도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홍귀달은 성종 때 연산군 생모 윤 씨를 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 싫어하던 연산군에게 할 말은 하는 강직한 신하 홍귀달은 못마땅한 존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뛰어난 능력으로 속국조보감(續國朝寶鑑), 역대명감(歷代明鑑)을 편찬했고, 경기도관찰사로 옮겼다.
그러나 자신의 손녀를 세자빈 간택을 위해 입궐시키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해 결국 장형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중종반정 후 복관되고 이조판서를 추증받았다.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정출헌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의 '홍귀달 선생의 삶과 시대정신' , 박종순 공주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의 '홍귀달 선생의 시와 문학세계',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의'홍귀달 선생의 사상과 위상'에 대한 연구발표가 있었다.
학자들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가 시대를 바꿔나갈 수 있고 언로를 차단하고 직언하는 신하를 멀리하는 지도자는 결국 퇴출당하고야 만다는 교훈을 홍귀달과 연산군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다"고 평했다.
[{IMG02}]고윤환 문경시장은 "연산군 같은 폭군에게도 목숨을 걸고 직언했던 홍귀달 선생의 사상과 선비정신을 문경과 경북의 정신으로 잘 이어받을 수 있도록 재조명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현한근 문경문화원장은 "홍귀달 선생은 경북 선비의 상징적 존재임에도 그동안 재조명작업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앞으로 선생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고 보다 많은 분이 동참해 그분의 높은 가치를 공유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에 홍귀달 선생의 부부 묘가 있다. 묘 아래에는 신도비(경북유형문화재 제122호)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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