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운전면허를 딴 A씨는 10여년간 꾸준히 운전대를 잡았다. 자영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운전은 꼭 필요했다. 그러나 A씨의 운전면허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는 오랫동안 뇌전증을 앓아온 환자였다. 흔히 간질로 부르는 뇌전증은 갑작스러운 경련을 일으킬 수 있어 자동차 운전면허 발급 과정이 까다롭다.
하지만 A씨는 병력을 숨기고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해 손쉽게 면허를 땄다. A씨는 이런 사실을 뇌전증 환자 모임 등에서 털어놨다가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대구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16일 자동차운전면허 결격사유인 뇌전증 병력을 숨기고 운전면허를 부정취득한 혐의로 25명을 입건하고 면허를 취소했다. 운전면허 시험에 뇌전증 병력을 속이고 부정응시한 이들이 적발된 건 전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운전면허 응시원서의 질병·신체신고서에 ‘특이사항 없음’으로 표기해 면허를 따고 적성검사도 통과하는 등 길게는 20여년간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26~42세의 자영업자나 회사원 등이었고, 심지어 견인차 운전자도 포함됐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에 가해진 전기자극 때문에 일시적, 불규칙적으로 발작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꾸준히 약물 복용을 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경련을 일으키는 탓에 원칙적으로 운전면허 취득이 금지된다.
다만, 최근 2년 간 뇌전증이 발병하지 않았다는 전문의 소견서를 내고 도로교통공단 운전적성판정위원회에서 정상운전 판정을 받으면 면허를 딸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뇌전증 환자들이 번거로운 절차를 피해 응시원서의 질병신고란에 ‘없음’으로 표시한 뒤 운전면허를 부정 취득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뇌전증 환자 모임 등을 통해 허위로 병력을 기재한 A씨를 적발한 후 운전면허를 취득한 뇌전증 환자들의 특징을 정형화해 불법 취득 사례를 찾아냈다.
문제는 뇌전증 환자들이 허위로 병력을 기재해도 걸러낼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뇌전증 병력 정보를 갖고 있는 병무청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 정보 공유가 사실상 제한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건강보험공단은 개인정보침해를 이유로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뇌전증 환자의 정보만 경찰과 도로교통공단에 통보한다. 하지만 실제로 뇌전증으로 6개월 이상 장기 입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찰 관계자는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불법 취득을 막으려면 우선 관련 기관 간 정보 공유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단위로 운전면허를 부정 취득한 뇌전증 환자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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