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1 정신 대구경북의 '얼' <9>손병선 광복회 안동지회장 "온 집안이 이산가족 돼"

손병선 대한광복회 안동지회장
손병선 대한광복회 안동지회장

"남들은 할아버지가 5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알지만, 10년 4개월을 형무소에서 보내셨습니다."

안동 임동지역 만세시위 주동자로 몰려 5년 옥고를 치른 것으로 기록돼 있는 손영학 선생의 손자 손병선(68) 대한광복회 안동시지회장은 손 선생의 실제 복역 기간이 알려진 것보다 더 길었다고 했다.

손 지회장은 "임동 만세시위를 지휘하다 일경에 붙잡혀 5년 옥고를 치르고, 출소해 곧바로 청송에서 류연복 선생 등과 또다시 만세시위를 주도, 5년간의 옥고를 더 치르셨다"며 "한평생을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다 보니 할아버지는 생전 10년 4개월을 형무소에서 지내셨다. 하지만 아직 국가에서는 5년만 인정을 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못했다고 전했다. 끼니로 나온 음식은 콩에서 기름을 짜낸 뒤 남은 찌꺼기를 뭉친 것이 고작이었으며 다른 만세시위 주동자를 밝혀낸다는 명목으로 구타와 가혹행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옥고를 치른 사람 중에는 6개월 만에 장애인이 돼 출소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며 "할아버지께서 10년이 넘도록 복역하시면서 목숨을 부지하신 것은 독립된 나라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10여 년의 복역이 끝나고 일경의 감시와 끊임없는 핍박으로 손 지회장의 집안은 결국 만주로의 망명을 선택했다. 온 집안이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손영학 선생은 한의원을 차려 독립운동가들의 건강을 돌봤다고 한다.

하지만 만주로 이주하면서 이산가족이 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과는 다른 역경을 겪었지만 손 지회장은 만세시위를 이끈 조부의 업적이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손병선 광복회 안동시지회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많은 분의 피와 땀이 모여 결국 광복을 맞게 됐다.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내신 할아버지의 업적과 그걸 감내하고 지원한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에 더없는 보람과 자긍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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