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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싫어 가출한 철부지 막내 아들에서 상남자로 변신한 구본길

구본길
구본길

지난 20일 치러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전. 아시안게임 펜싱 최초로 개인전 3연패에 도전한 '펜싱 황제' 구본길(29·국민체육진흥공단)의 상대는 공교롭게도 대표팀 후배 오상욱(22·대전대)이었다. 아시안게임에 처음 출전한 신예 오상욱은 이번 대회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노렸다.

구본길 역시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었던 2010 광저우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그렇기에 그는 금메달이 간절한 후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후배의 앞날을 위해 결승에서 다소 느슨한 경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는 '스포츠 정신'을 따랐다.       

결과는 명승부였다. 오상욱이 달아나면 구본길이 쫓아가는 접전 끝에 결국 구본길은 15대14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경기가 끝나고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후배가 금메달을 땄으면 더 좋은 길이 열렸을 텐데 그런 게 걸린다"며 "단체전에선 개인전보다 더 뛰어 금메달을 꼭 따겠다"고 약속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구본길은 사흘 만에 약속을 지켰다. 그는 23일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오상욱, 김정환(35·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24·국군체육부대)와 함께 출전해 이란을 꺾고 한국의 2연패를 합작했다. 구본길은 이번 대회 한국의 첫 2관왕에 올랐다.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을 지킨 구본길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구본길은 오상욱을 끌어안으며 포효했다.

금메달의 공도 오상욱에게 돌렸다. 그는 "저보다 상욱이의 부담이 더 컸을 텐데 워낙 잘 뛰어줘서 저도 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며 "상욱이와 동료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다.

'상남자' 구본길도 한때는 펜싱을 관두려 가출까지 감행한 철부지 소년이었다. 대구 오성고 이승용 감독(48)은 "어느날 본길이가 훈련장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본길이에게 다음날 오후 1시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펜싱을 관두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겠다고 혼을 냈는데 정확히 1시에 훈련장에 돌아왔다"고 떠올렸다.

당시를 회상하며 구본길은 "당시 이 감독님이 계셨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며 "펜싱의 길을 걷게 해주신 이 감독님께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로 누나만 3명이 있는 막내 아들 구본길은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매형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께서 몸도 좋지 않으신데 저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번에도 온 가족이 부모님 댁에 모여 TV로 저를 응원해주셨다. 그 덕에 2관왕이 가능했다"며 웃었다.

정정당당한 승부로 자신은 물론 후배에게도 금메달을 안겨준 '검객' 구본길은 가족까지 살뜰히 챙길 줄 아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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