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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비꽃 사윤수(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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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폭우는 허공에서 땅 쪽으로 격렬히 꽃피우는 방식이다 나는 비의 뿌리와 이파리를 본 적이 없다 일체가 투명한 줄기들, 야위어 야위어 쏟아진다 빗줄기는 현악기를 닮았으나 타악기 기질을 가진 수생식물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비에겐 나비가 아니라 허공을 버리는 순간이 필요한 것 두두두두두두 타닥타닥타닥 끊임없이 현이 끊어지는 소리, 불꽃이 메마른 가지를 거세게 태울 때의 비명이 거기서 들린다 꽃무릇의 핏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뺐다고 치자 그게 백혈병을 앓는 군락지처럼 줄기차게 거꾸로 드리우는 것이 폭우다 추락의 끝에서 단 한 순간 피고 지는 비꽃 낮게 낮게 낱낱이 소멸하는 비의 꽃잎들, 그 꽃 한 아름 꺾어 화병에 꽂으려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계간 『시와 경계』 (2012년 겨울호)

폭우가 허공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면서 바닥에 이는 파문이 바로 '비꽃'이로구나! 이때 쏟아지는 빗줄기는 투명한 꽃대궁, 바닥에 이는 파문은 만개한 꽃잎, 그렇다면 비구름과 안개는 뿌리와 이파리인가? "두두두두두두 타닥타닥타닥" 이렇게 빗방울 듣는 소리를 불꽃 타들어가는 소리로 바꾸어 놓다니!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현이 끊어지는 소리와, 불타는 메마른 가지의 비명소리가 들리다니! 빗줄기를 현악기로, 빗소리를 타악기로 다양하게 변주해내는 솜씨라니!

비꽃을 피우기 위해 왜, "비에겐 나비가 아니라 허공을 버리는 순간"을 맞이해야 할까? 허공에 매달린 것이 '눈꽃'이라면, 땅바닥에서 피어나는 것이 '비꽃'이라서? 비상이 아니라 낙하의 순간에 꽃봉오리 터뜨리는 것이 '비꽃'이라서? 어쨌거나 "추락의 끝에서 단 한 순간 피고 지는" '비꽃'은 소멸의 아픔을 겪는 우리의 생애와 별다르지 않다. 아픔을 씻어내며, 빗발치는 폭우 속으로 질주해 보자. 웅덩이에 고인 빗물을 맨발바닥으로 찰박찰박 튕기며, '비꽃'을 한가득 격렬히 피워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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