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지방자치의 비극을 넘자

최병호 행정학박사·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우리 모두가 그토록 갈망하던 풀뿌리 민주주의 즉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인 막을 올린 지도 어언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주민의 삶을 바꾸는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지방자치제는 없으며 아직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현행 지방자치제는 무늬만 지방자치이다. 주권재민의 원칙에 의하여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임에도 주권이 없다. 지방자치제는 있으나 주권 없는 지방자치이며, 또한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된 분권 없는 지방자치이다. 이는 지방자치의 2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주권 없는 지방자치이다. 현행 지방자치제는 지역 주민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고, 지역 주민의 관심과 참여, 감시가 없는 지방자치이다. 이는 헌법이나 법령으로 주민 발안권, 주민 소환권, 주민 감사권 등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주민 소환권, 주민 감사권은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나 요건이 엄격하여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 지방의회는 자신들의 이해와 당파적 득실만을 따지고 전문성의 결여로 비판만 있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여 지방정부의 거수기 또는 시녀 노릇을 함으로써 행정의 불합법성을 인정해주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방의회는 지방의원과 공무원만의 회의이며 그들만의 잔치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 민선 단체장은 각종 비리에 연루되거나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임기 동안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다음으로, 분권 없는 지방자치이다. 지방분권은 국가의 권력을 중앙정부에 집중시키지 않고 지방정부에 이양하여 지방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토록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중앙정부는 입법권, 재정권, 행정권, 조직권 등의 실질적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이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한 간섭과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중에서 입법권은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하여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에 예속하도록 함으로써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하급기관으로 만들고 있다. 재정권은 대다수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도가 50% 이하인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중앙정부는 국민이 낸 세금을 이용해 지방정부의 목줄을 죄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지방정부는 정책의 연속적 추진은 물론 제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지방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방자치는 사상누각과 같다. 행정권은 중앙정부의 업무를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하여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자치권은 물론 자율성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권의 전국적인 획일화로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지방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 양극화, 청년 실업 등 당면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 함께 힘을 모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진정으로 주민자치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분권 개헌과 법령 정비를 통해 지역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여야 한다. 이것이 지방자치의 비극을 넘어 풀뿌리민주주의인 주민자치시대를 꽃피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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