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오징어 불배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오징어잡이 배 불빛이 눈부시다. 여러 해 동안 오징어가 앞바다로 내려오지 않으면서 어민들의 애를 태웠다. 그러나 다행히 올해는 그런대로 오징어가 잡힌단다. 바다로 낸 창에는 어김없이 불빛이 환하게 어렸다. 영일만 안까지 들어온 배들의 불빛에 마음까지 환해졌다. 예전처럼 수평선을 이을 만큼 진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며 조업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

불빛에 이끌려 밤바다로 나갔다. 집집마다 덕장을 기대놓고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피덕피덕 말라가는 오징어가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까꾸리개로 나간 김에 호미곶 자락을 걸었다. 오징어 배 불빛 덕에 밤길을 더듬대지도 않았다. 파도도 철썩대며 따라붙었다. 덩달아 걸음이 가벼워졌다. 호미곶 둘레길이 만들어지면서 해안을 따라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저께는 걷기 축제까지 있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던 호미곶 길이 요즘 들어 찾는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이 길은 걷는 재미도 있지만 '호랑이 꼬리'라는 점에서 묘한 매력을 더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다. 단군 신화에서 여인이 되고 싶어 환웅을 찾아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호랑이와, 호랑이 처녀를 사랑한 김현의 이야기는 참으로 애절하다. 그런가 하면 과부 호랑이가 성골 장군을 구해주고 그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호환이라는 무서운 기억이 있다. 호미곶 강사리에도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호랑이를 무서워하거나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DNA에는 호랑이가 무섭기보다 이웃처럼 친근한 심상으로 그려져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옛이야기 곳곳에는 꼭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람이 되려다가 탄로 나서 쫓겨나는, 힘을 과시하다가 혼이 나는, 토끼의 꾀에도 속을 만큼 어리석거나 혹은 익살스러운 우리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이웃으로, 때로는 귀신을 막아주는 액막이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에게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자연스레 호미곶을 찾아 걷는 걸까.

호랑이 꼬리에서 밤바다를 바라본다. 여전히 오징어 배 불빛이 밝다. 불빛과 어울려 가을 밤바다가 조화롭다. 그 배들을 지키는 등대가 말을 걸어온다. 파란빛이 호랑이 눈빛처럼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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