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응급실을 비워야 한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혈관촬영 기기는 혈액에 녹는 조영물질을 혈관에 투입 후 X선을 투사하여 영상을 획득한다. 초기엔 혈관 질환을 진단하는 기기였지만, 가느다란 관처럼 생긴 카테터를 혈관속으로 이동시켜 색전 물질로 혈관을 폐색시키거나 철망을 혈관에 입히는 기술의 개발로 이제는 수술에 버금가는 영역을 확보해왔다.

혈관 촬영기기는 20억원이 넘어가는 고가의 장비이다. 영상의학과 영역 내에 설치되어 있는 기기 중 1기는 권역별 외상 센터로 지정되면서 구매한 것인데 사용 빈도가 많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대기중에 있다. 대기 환자가 많아져 치료가 지연될 경우, 사용의 유혹을 느끼지만 응급외상환자 이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일본의 한 유명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가장 놀란 것은 환자가 걸어 들어가는 통로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3차병원 응급실을 갈 수 없다. 응급실에 환자도 거의 없다. 환자가 발생하면, 구급 통제센터에서 환자의 상황을 파악해서 중증이라고 판단되면, 3차병원인 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 총 환자는 하루에 10명 내외이다. 응급실에 구급차가 도착하면 차량진입 문이 열리고, 준비된 응급의료진이 진료를 시작한다. 신속하고 모든 의료진은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으며 빈틈이 없다. 중증환자가 아닌 환자는 2차 진료기관을 이용하여야 한다.

미국의 대학병원 역시 응급실에 함부로 갈 수 없다. 일단 구급차를 부르면 한화 100만원정도는 각오해야 하며, 진료비 역시 1천만원은 쉽게 나온다. 수술까지 하게 되면 5천만원까지 나올 수 있다. 물론 의료보험이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것은 많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결과적으로 응급실이 그렇게 많은 환자가 몰리지 않는다.

프랑스 병원은 대부분 국영이며, 소아전문병원, 복부 전문병원, 뇌전문병원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응급의료 체계인 SAMU는 응급 환자 발생장소에 의사를 직접 보내기도 한다. 우리로 따지면 119 구급대에 의사가 직접 탑승하여 환자를 적절한 처치 후 가장 치료가 용의한 곳으로 이송한다.

지난주 많은 의사들이 충격에 빠졌다. 응급환자 진료 중 사망사건에 대하여 당시 가정의학과 전공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가 전문의에게 실형이 내려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내용만으로 자세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응급실과 관련한 논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병원 응급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루에 200명 정도가 방문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질환을 가진 200명을 처치하기 위해 의사 중 가장 경험이 적고, 직급이 낮은 인턴·레지던트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도의 실패가 확실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프랑스 일본 사람보다 더 많이 아픈 것도 아니다. 특별히 매일 200여 명의 다양한 환자를 보다가 오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환자를 봐야할 이유가 없으며, 환자도 기다림과 부적절한 치료에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응급실은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전문가가 대기 중에 있다가, 환자가 오면 관련 전문가들이 응급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치한 후 각 진료과로 이동시키고, 다시 다음에 올 응급환자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런 상황이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응급실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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