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울릉도의 삶과 문화 100년의 이야기③

울릉도 주민들이 강고배를 타고
울릉도 주민들이 강고배를 타고 '손꽁치잡이'를 하고 있다. '손꽁치잡이'는 꽁치를 손으로 잡는 울릉도 전통어업 방식이다.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울릉도에 살며 주민의 생활상을 기록한 미국인 험프리 렌지의 영상물을 캡쳐했다. 울릉군 제공

<글 싣는 순서>

①오징어잡이
②강고배 제작
▶③음식문화
④종교와 삶

"초기 이주민은 해변이 아닌 산골에 정착했다. 이들은 화전을 일구며 겨울이 오기 전까지 열심히 일했으나 찾아온 것은 굶주림과 추위였다. 육지로 되돌아갈 수도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잇따랐다."

'울릉군지'는 100여 년 전 울릉도 주민의 팍팍했던 생활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의 논문 '울릉도 개척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말 1천100여 명 정도였던 울릉도 주민 대다수는 화전을 일구어 보리와 밀, 감자, 콩 농사를 지었다. 가파른 지형 탓에 벼농사는 쉽지 않았다. 어업 활동은 미역채취 정도였다.

인구가 늘어 지금과 비슷한 1만명 선이던 30년 뒤에도 생활은 비슷했다. 동아일보는 1928년 9월 1일부터 12일까지 11차례에 걸쳐 울릉도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기자는 당시 울릉도에 들어와 주민의 생활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울릉) 도민은 농사를 주로 하고 어업을 약간 병행하는 형편으로…농산물로는 감자와 옥수수가 제일 많고, 쌀은 극히 적고 야채도 귀하다."

◆ 옥수수·감자 주식…산나물로 끼니 잇기도

이 시기 주민들의 주식은 옥수수와 감자였다. 옥수수를 맷돌에 쌀알 절반 크기로 갈아 감자와 함께 밥을 짓듯이 물을 부어 익혀 먹었다.

흉년이 들면 산에서 캔 나물로 끼니를 이었다. 당시 먹었던 산마늘이 울릉도에선 '명을 이었다'고 해서 '명이'로 불리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 식생활이 얼마나 열악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1934년 12월 12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문턱에 다다르니 주렁주렁 엮어서 달아놓은 미역취가 눈에 띈다. 부지갱이 나물을 말려 항아리에 담아 놓은 것도 여기저기 있다. 부잣집에서 볏섬을 쌓아 놓듯 어느 집이나 두 가지 나물 준비가 돼 있다. 장 씨가 점심으로 죽그릇을 가지고 나와 기자의 눈앞에 내민다. 나물 건더기만 빽빽한 푸른 죽이다. 이 죽을 숟가락으로 뜨면 한 술에 곡식 알맹이라곤 강냉이 두세 조각이 얹어진다. 감자 조각 삐져 넣은 것은 세 술 만에 한 조각 담길까 말까…."

서면 태하리에 사는 박해수(87세) 씨는 울릉읍 도동에 살다 16살 무렵이던 1940년대 후반 이곳으로 왔다. 강냉이 밥을 도저히 먹기 싫어서였다. 당시 태하리는 울릉도를 통틀어 논이 가장 많았다.

"'논이 젤로 많은 곳이 어데고?' 물으니 태하동이라 카데요. 벼농사 지어 쌀밥 먹고 싶어 왔는데 쌀밥은 못 먹고 고생만 디따 했지요."

벼농사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식단은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나리동 처자들은 쌀 한 말 못 먹고 시집간다'란 말이 생길 정도였다.

대신 다양한 밥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해조류인 대황을 삶아서 물에 우린 뒤 쌀이나 보리를 섞어 대황밥을 지었고, 명이 줄기를 썰어서 명이밥을 만들었다. 무채를 썰어서 보리 옥수수와 함께 밥을 지은 무밥, 옥수수를 갈아 넣고 쌀이나 보리와 함께 밥을 한 옥수수밥도 마찬가지다. 쌀은 줄이면서 양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었던 만큼, 배합 비율은 집집마다 달랐다.

허원철(49) 울릉군 공보팀장은 울릉읍 저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년 때 도동에 있는 해발 200m대 산골 깍끼등 마을로 이사 왔다. 부모님은 감자와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허 팀장은 "80년대 초반까지도 옥수수와 감자를 7대 3으로 섞어 주식으로 먹었고 쌀밥은 명절과 제사 때나 맛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울릉도는 육지와의 교통이 불편한 탓에 산나물 중심의 반찬이 발달한 것도 특징이다. 특산 산나물로 이름난 미역취, 부지갱이, 명이, 전호, 삼나물, 고비 등은 100여 년 전부터 지천에 깔렸었다. 1980년대 후반쯤부터 미역취와 부지갱이를 밭에서 키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호를 제외한 특산 산나물 대부분을 밭에서 재배한다.

◆ 오징어 부산물도 주요 식재료

울릉도에선 오징어를 해체하고 난 부산물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오징어 내장탕이 대표적이다.

수산물 내장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식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쉽게 부패해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렵고 손질이 까다로운 반면 사용할 수 있는 양은 적기 때문이다.

성어기 울릉읍 저동 어판장에선 해체한 오징어 내장을 따로 모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선별한 오징어 내장은 식당 등에 판매돼 오징어 내장탕의 재료가 된다.

오징어 내장은 크게 2가지 색으로 나뉜다. 적갈색은 간장 부위, 흰색은 기타 내장기관이다. 흰색을 띠는 내장 가운데 심장, 수란관, 맹장, 난소 등을 내장탕 재료로 활용한다. 아가미는 식감이 나쁘고, 위는 음식물 찌꺼기 제거가 쉽지 않은 탓에 재료로 쓰지 않는다.

일부 주민은 오징어 내장탕이란 이름 대신 '이카 창대기국'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오징어의 일본식 발음인 '이카'(イカ)와 내장을 뜻하는 비속어 '창대기'가 결합한 이름이다. 오래전 주민들이 먹을 게 없던 시절 호박잎을 함께 넣어 영양보충을 위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지만 요즘엔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징어 누런창'도 내장을 활용한 오래된 전통 음식이다. 오징어 내장 가운데 '누런색 창자'가 재료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은 적갈색을 띠는 간이 주재료다. 오징어 간을 모아 염장한 뒤 보름 정도 숙성해 음식에 활용한다. 누런색을 띠고 있어 대다수 울릉 주민은 '오징어 똥창'으로 부른다.

오징어 누런창의 조리 형태는 크게 2가지. 찌개와 쌈장 형태다. 찌개는 '오징어 누런창 찌개' '오징어 똥창찌개'로, 쌈장 형태는 '뽀글장' '빡빡장'이라고 부른다.

빡빡장은 누런창과 된장을 냄비에 넣고 볶다 물을 조금 부은 뒤 고춧가루와 양파, 마늘, 청양고추 등을 넣고 자박하게 졸여낸 형태다. 쌈장처럼 먹거나 밥에 넣어 비벼 먹기도 했다. 찌개는 된장을 넣어 볶은 뒤 물을 붓고 시래기와 갖은양념을 넣어 푹 끓여낸다. 1980년대 후반까지 주민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던 일상적인 음식이다. 배추 같은 채소가 있을 땐 쌈장처럼 찍어 먹었고, 그렇지 않을 땐 찌개로 끓여 먹었다.

오징어 누런창으로 만든 음식은 관광객의 호불호가 갈린다. 생선 특유의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 때문이다. 오징어 내장탕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울릉도 주민 다 됐네."

육지에서 들어와 살게 된 이들이 누런창을 거부감 없이 먹으면 으레 듣게 되는 인사말이다.

◆손꽁치잡이와 꽁치식해

'손꽁치잡이'는 꽁치를 손으로 잡는 울릉 주민의 전통어업 방식이다.

울릉도 근해에선 옛날부터 꽁치가 많이 났다. 보리가 익는 5, 6월쯤이면 꽁치는 산란기를 맞아 울릉도 근해를 찾았다. 꽁치는 산란철이 되면 자기 몸을 다른 사물에 비비는 습성이 있다.

이 시기 주민들은 떼배나 강고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몰'이란 해초를 물 위에 띄워 꽁치를 유인했다. 꽁치는 산란하기 위해 몰 속으로 몰려드는데 이때 바닷물에 손을 넣어 꽁치를 잡는다. 손가락을 펴서 담그고 꽁치가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길 기다리다 건져 올리는데, 한손으로 3마리를 한꺼번에 잡기도 했다.

울릉도 주민은 이렇게 잡은 꽁치로 젓갈을 담갔다. 주민들은 '꽁치식해'로 불렀다. 꽁치와 소금의 비율이 7대 3이 되도록 해서 3개월 정도 숙성한 뒤 먹었다. 허원철 팀장은 "5월에 담그면 8월쯤 먹을 수 있었다. 찢어서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김치를 담그거나 겉절이 등 각종 음식을 만들 때 다양하게 활용했다"고 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 가정집에서 꽁치식해를 담갔지만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육지와 울릉도를 잇는 배편이 늘어 육지의 다양한 젓갈이 울릉도로 들어오게 된 데다 최근 10년 사이 동해안 꽁치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봄철 꽁치를 잡는 울릉도 어선도 3척 정도로 줄었다. 이렇게 당일 잡은 신선한 꽁치는 주로 횟집에 판매된다. 횟집에선 곧바로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가 사철 물회로 내는데 비린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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