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상 '시간에 머물다' 전
시인이자 월간지 기자로 있는 사람이 있다. 시인으로서 이름은 이선욱이고, 기자로서의 이름은 이승욱이다. 그가 쓴 시를 읽다보면, 이 작가가 시대착오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말라르메 혹은 아폴리네르에게 경의를 보이는 것 같다. 몇 해 전에 낸 시집에 '예술'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정오의 한편에는/싱그러운 자두가 있고/자두의 빨간 그림자가 있고/굴러가지 않는 자두의/빨간 환상이 있네 // 나머지는/ 아름다운 구도와/ 노란 빛의 세계/때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존재하고 함께 시들어가는/예술들'
대상과 색감과 상태와 그것들을 아우르는 환경 모두가 예술이라는 이야기일까. 예술을 복수형으로 쓴 시인의 예술론을 두고, 나는 화가 김택상의 그림을 떠올린다. 김택상, 지금 한국의 단색화와 색면 추상을 이끌고 있는 세대 바로 밑 연배에서 활동 중인 화가이다. 이선욱의 시에 쓰인 빨강과 노랑을 바탕으로, 우리 감정의 깊은 곳에서 이끌어내는 일에 가장 앞서 가는 작가. 그가 다시 대구를 찾았다. 화가가 전시를 벌이는 곳은 아소갤러리다. 굉장히 건조하고 단순한 건축 양식 안에 물과 꽃나무를 배치하고 그림으로 뷰컷을 완성하는 이 장소는 미술애호가들 가운데에서도 소수만이 알고 방문하는 곳이다.
작품을 걸고 놓을 수 있는 면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몇 개의 작품만 완성해서 아무렇게나 놓아도 훌륭한 풍광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에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미술가들이 이 곳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엄격함과 소박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공간을 제대로 다루는 작가들은 별로 없다. 김택상은 예외로 치고 싶다. 그는 이 고요함이 쌓인 회색 공간에 감각적인 색으로 점을 찍듯이 한 곳을 점유한다. 김택상이 본인의 작품을 어떤 과정으로 완성하는지 아는 이라면, 그 사람은 배치 또한 작업의 한 부분이란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작가는 물감을 엷게 푼 물에 캔버스 천을 담가 원하는 색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 작품이 완성되는 시간은 몇 해에 걸쳐 느리게 머문다.
작가가 가는 길이 험하게 느껴지는 건 굳이 그런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힘든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작위적인 스토리텔링이나 현학적인 과잉 해석이 비평이란 이름으로 끼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부분만 걷어낸다면, 자두처럼 싱그러운 맛과 향과 색을 품은 그림은 이게 예술이 아니라면, 예술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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