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식은 주관적이다. 하나의 사실도 나의 심리와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곤 한다. 얼마 전 서울로 올라가는 KTX 열차 안 화장실 거울을 보는데, 먹고 살기 위해 희끗해진 흰머리와 늘어난 이마 주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2주 정도 뒤에 서울 모 종합복지관에서 일하는 후배로부터 강의요청 전화를 받고, '현장에서 직접 일하기'란 주제로 2시간여 특강을 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 한 분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해줬다. "저희는 우물안 개구리였어요. 그냥 저소득층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안의 거울을 통해 흰머리와 주름이 또다시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KTX 열차 안 화장실 거울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제법 품격있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처럼 보여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쫓아다닌 시간 속의 나는 초라하게 보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 시간 속의 나는 당당하고 멋지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내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도 자주 반추해 보는 듯 하다. 5년여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대구는 현재 나에게는 어떤 모습일까.
1981년 대구에 사는 큰 이모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높은 빌딩들과 인파 가득한 동성로, 즐길거리 가득했던 달성공원과 동촌유원지는 인구 10만 남짓의 제천(충청북도) 촌놈인 나에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분주하고, 바쁜 대도시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유년시절의 대구는 경부고속도로로 대변되는 경제 성장기의 역동성과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로 느껴졌다.
지금 느끼는 대구는 어린시절 다가왔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졌다. 나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기준도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문화적 기준에 많은 무게를 부여하는 것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대구의 치맥, 동성로, 수성못 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축제와 서울보다 먼저 무대에 올려지는 뮤지컬, 각종 전시회 등을 보면서 예전보다 문화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여유로운 대도시로 변신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경험한 대구가 근육질이었다면, 지금은 우아하고 세련돼 보인다. 대구 시민들의 삶의 질이 오히려 발전속도가 빠르다고 하는 여타 신흥 대도시의 시민들보다 더 높지 않을까. 알고 나면 대구는 참 멋있다.
최근 읽은 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이란 책에서 저자는 조직과 리더에게 성장을 위한 에너지와 용기를 선사하는 자기발견 질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말한다. 그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나의 일에 충실한 것인데, 현재 대구의 멋에 기여할 작은 문화 콘텐츠라도 하나 더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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