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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어느 나뭇잎의 노래/ 여 정(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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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햇살이 내리쬘 때마다

나는 너무 미안했다

너도 나도 다 같은 초록인데

내 등 뒤로 흘려보낸

큐티클층(層)의 그 은빛 환희만큼의 그늘이

나는, 나는 너무 미안했다

들풀들의 그늘진 얼굴이 떠올라, 이 서러운 광합성

겨울이 닥쳐오면 모두 무너져버릴 헛된 꿈인 것을

차라리, 햇살이 내 살에 구멍을 뚫고

숭숭숭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뚫린 구멍으로 들려오는 들풀들의 밝은 웃음 속에서

나 그렇게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면……

―시집 '벌레 11호' (문예중앙, 2011)

* * *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온몸에 햇살을 받을 때마다 나뭇잎은 왜 그토록 미안해했을까? 생명현상의 꽃인 광합성을 왜 서럽다고 했을까? 그건 다름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햇볕을 쬐지 못하는 들풀들의 그늘진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서다. 나뭇잎은 들풀에 대해 "너도 나도 다 같은 초록"이라며 동류의식을 드러낸다. 아울러 "겨울이 닥쳐오면 모두가 무너져버릴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며, 자신의 햇빛바라기 삶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나뭇잎이 선택받은 자라면, 그늘진 생애가 드리워진 들풀은 소외된 자를 표상한다. 따라서 "차라리, 햇살이 내 살에 구멍을 뚫고/ 숭숭숭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나뭇잎의 끔찍한 희망사항 속에는 들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소외와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자 하는 숭고한 희생심이 깔려 있다. "뚫린 구멍으로 들려오는 들풀들의 밝은 웃음 속에서/ 나 그렇게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면……"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상상 속에 얼마나 거룩한 순교적 정신이 깃든 것이랴? 늦가을 오후 비낀 햇살에 실려 오는 '어느 나뭇잎의 노래'가 우리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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