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정폭력·성폭력에 노출된 대구 이주여성들

대구이주여성상담소 접수된 상담 10건 중 8건이 가정폭력ㆍ성폭력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 체류기간 연장해야”

#캄보디아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A씨는 밤이 공포스러웠다. 결혼 후 3개월이 지나면서 남편의 변태적인 성관계 요구가 이어진 탓이었다. 남편은 외설적인 영화에 나오는 성행위를 요구했고, A씨가 거절하면 머리채를 잡고 때렸다. 견디다못한 A씨가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결혼하면 당연히 따라야하는 의무"라는 답만 돌아왔다.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B씨는 입국 첫 날부터 믿기 어려운 경험을 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시아버지의 손길이 B씨를 더듬었던 것. 시아버지는 B씨의 몸을 만지고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깜짝 놀란 B씨는 남편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놨지만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시아버지의 성추행이 이어지자, B씨는 결국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대구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중 상당수가 일상적인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신음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동시에 겪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보복이나 추방 등을 걱정해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부설 대구이주여성상담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담 건수 1천296건 중 995건(76.8%)이 가정폭력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폭력 32건(2.5%), 성매매 13건(1.0%), 경제적 어려움이나 일자리 등 기타 256건(19.7%) 등이 뒤를 이었다.

최현진 대구이주여성 상담소장은 "성폭력의 경우 드러난 수치는 낮아보이지만 가정폭력과 동시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성폭력 상담사례가 3%대에 그친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법적·심리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런 폭력을 겪어도 피해를 숨기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이다. 신고했다가 가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네팔에서 온 한 이주여성은 일하던 농장 관리인에게 4차례나 폭행을 당했지만 신고조차 못했다. 피해 여성은 상담 과정에서 "경찰에 신고하면 네팔로 추방당할까봐 참기만했다. 한국 법도 잘 알지 못하고 보복도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성폭력을 겪고도 피해 신고를 두려워하는 이주여성들을 구제하려면 체류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폭력 피해 여성에겐 체류연장 시 입국비자와 상관없이 노동이 가능한 비자를 발급해주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겐 일자리를 제공해 현실 적응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강혜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체류연장 시 받는 비자는 대부분 기타(G-1) 비자인데,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도 없고 연장기간이 6개월로 짧아 피해 여성들이 체류 불안정에 시달린다"며 "미국의 U비자나 T비자처럼 일정기간 체류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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