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對)국민 소통'으로 평가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 爐邊情談)은 1933년 3월 12일 라디오 전파를 탄 '은행 위기에 대하여'가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루스벨트는 민주당 소속 뉴욕주지사로 있던 1929년부터 그렇게 했다. 그 목적은 매우 정략적이었다. 주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도록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성격이 확 바뀌었다. 정적에 대한 정략적 공격의 수단에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소통의 장이 된 것이다. 노변정담은 엄밀히 말해 대담이 아니라 연설이었다. 이것이 '벽난로 앞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편안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의 노변정담으로 불리게 된 것은 루스벨트의 참모 스티븐 얼리의 아이디어로 언론인 해리 버처가 두 번째 담화인 '유럽 전쟁에 대하여'의 보도자료에 그렇게 표현하면서부터다.
루스벨트의 연설은 이런 명칭에 꼭 맞았다. 친구를 대하듯 정감 어린 말투로 주요 정책과 미국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실 상황을 유리하게 포장하거나 정책 실패나 불리한 문제에 대해 변명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1942년 2월 23일 방송된 '전쟁의 경과에 대하여'는 좋은 예다. 연설에 앞서 루스벨트는 전 국민에게 세계지도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 어디에서 싸우고 있으며 현재 전황은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변정담의 청취율이 평시 18%, 전시 58%로 당시 인기 절정의 라디오 쇼보다 높았던 것은 이런 진정성 때문이었다.
19일 방송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인내심을 시험할 좋은 기회였다.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끄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억누르게 한, 시쳇말로 '자뻑'의 '쇼통'이었기 때문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첫 단어만 들어도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됐는데 똑같은 말로 국민을 다시 '고문'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권한다. 진정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싶으면 노변정담의 원고라도 구해 읽어보라고 말이다. 어떤 것이 '소통'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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