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개별 관광 정책 성공 위해
북 호응·미 협조·국민 지지 맞물려야
남북 관계 개선 북미대화 견인 기대
올해 미지의 땅에 한번 가보고 싶다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남북협력 구상에 대해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의향을 담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지 외교관의 자율성이 거의 없는 현대 외교의 환경을 고려하면 개인적인 견해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대사가 주재국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외교관의 기본 자세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 여당이 그를 향해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관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에 파견되어 거짓말을 하는 정직한 인사이다." 17세기 초 베니스 주재 영국 대사 위튼 경의 메모에서 나온 말이다. 달리 표현하여 외교관은 '명예로운 간첩' 또는 '공식적인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영국의 니콜슨 경은 직업 외교관의 필독서인 '외교론'(Diplomacy)에서 자신의 경험을 담아 외교관의 자질을 이렇게 말했다. 강경한 내용도 상대를 흥분시키거나 실례가 되지 않게 신중한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본국뿐 아니라 주재국에도 충성해야 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라야 한다고. 그래서 외교 사절의 파견에는 반드시 사전에 상대국의 의향을 확인하는 아그레망(agrement)이 관례화되었다.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해리슨 대사는 니콜슨 경이 말하는 바람직한 외교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명예로운 간첩이나 공식적인 거짓말쟁이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한국 정부와 친밀성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정책 의도를 파악해 본국에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해리슨은 40여 년간 해군에 복무하면서 이라크 전쟁 등 8개의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외교보다는 군사전략에 익숙해서 북한 문제를 피아를 구분하는 군사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해리슨 대사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도로 북한에 대한 개별 관광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그러면 정부는 왜 지금 개별 관광을 들고 나왔을까.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신년사에서 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자고 했을 때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개별관광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면 남북 및 북미관계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정부의 의도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남북관계에서 점수를 따자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외교는 여론이다. 아무리 훌륭한 외교도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면 쓸모가 없다. 정부의 남북협력론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4월 총선에서 나타날 것이다.
또 하나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교착상태에 있는 북미관계를 견인하려는 것이다. 북미대화에 올인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서 1년 반이나 속고 시간을 잃었다"(김계관 외무성 고문 발언)며, '새로운 길'이라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북미관계가 풀리면 남북관계도 개선된다는 수도거성(水到渠成)의 자세로 전적으로 미국에 보조를 맞추어 왔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2월의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아무 성과가 없다. 대통령 선거에 정신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관계에서 올해 안에 현상 유지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북미관계가 요동칠지도 모르는 유동적 상황이다.
성과 없음과 불확실성에 대한 조바심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것은 남북한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며, 한국도 안보의 축인 미국을 벗어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건은 제재라는 미국의 대북정책 틀 속에서 남북한이 자주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 그리고 남북한의 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모름지기 외교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상대가 있다. 정부의 대북 개별 관광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호응과 미국의 협조, 그리고 국민의 지지라는 삼자가 맞물려야 한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길'이다. 실패하면 북한 미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올해 평양에 갈 수 있을까, 미지의 땅에 한번 가보고 싶은 호기심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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