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부모들이 지쳐가고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 휴원과 학교의 개학 연기로 실내 생활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대신한 '황혼육아'에 조부모의 피로도 쌓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긴급돌봄서비스를 적극 활용해 숨통을 트는 한편 발상의 전환으로 가족 간 유대를 높일 활동들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엄마들이 지쳤다
자영업을 하는 A(40·대구 중구) 씨는 2월 말부터 하던 일을 쉬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남편이 오전 8시에 출근하면 5살, 9살 두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온전히 아이들을 봐오길 한 달 반. A씨는 한계상황에 왔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날씨까지 좋아지다 보니 아이들은 집 밖에서 놀자고 성화지만 코로나 때문에 나갈 수도 없기 때문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기다려온 학교 개학과 어린이집 개원이 재차 연기되면서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A씨는 "처음부터 희망이 없었다면 모를까 6일부터 괜찮아질 거란 기대를 갖고 있다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모든 게 허물어져버린 느낌"이라며 "독박 육아 기간을 더 연장하는 셈인데 울고 싶은 심정이다. 긴급돌봄서비스와 긴급보육서비스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경산에서 유치원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B(35) 씨는 6일로 예정돼 있었던 개원일만 바라보며 일과 육아를 병행해 왔다. B씨는 "휴가가 아니라 재택근무다 보니 육아에 온전히 신경을 쓸 수도 없었다. 아이들 교육은커녕 놀아줄 시간도 없었다"며 "아이들은 낮 동안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시간이 더 연장된다니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엄마 역할과 직장인 역할 두 가지를 요구받는 재택근무들은 폭발 직전이다. C(40) 씨는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도 남편이 육아를 떠넘겨 부닥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아이들이 엄마한테 매달리는데 일이 바쁜 날엔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해 미안한 마음 등 이래저래 너무 힘들다"고 했다.
◆황혼육아에 허리 휘는 조부모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빌릴 수 있는 부모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를 떠맡은 조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온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는 데다 시간도 하루 온종일이다 보니 3D 업종이 따로 없다. 특히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니다 보니 진이 다 빠진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안 그래도 성치 않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3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7살 손녀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는 D(61) 씨는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하두 졸라대서 나왔는데, 오랜 만의 바깥 나들이라서 그런지 신이 나 얼마나 뛰어다니는데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혹 아들 내외가 걱정할까봐 외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몸도 몸이지만 괜시리 속이는 거 같아 마음도 불편하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E(59) 씨의 경우 자신의 밥벌이도 해야 하고 아이까지 돌봐야 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E씨의 하루는 오전 7시 며느리의 손에서 6살 손자를 넘겨받으며 시작된다. 평소라면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내면 되지만 유치원 휴원이 무기한 연기되자 E씨는 손자를 식당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건 어쩌다 한 번씩 볼 때의 얘기다. 두 달째 온종일 보고 있자니 몸도 마음도 힘들다. E씨는 "아이를 돌보면서 장사 준비까지 하니 허리가 휠 것 같다. 더군다나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병원 진료처럼 꼭 해야 하는 일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하소연했다.
실내에서만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행동을 어디까지 못하게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머리를 아프게 한다. 맞벌이를 하는 자식 부부의 초등학생 아들을 대신 봐주고 있는 F(63) 씨는 "아이가 집에서 스마트폰만 끼고 사는데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지, 야단을 쳐야 하는지 골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지치는 가정 내 육아, 해법은
계속되는 가정 내 육아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맞벌이 등으로 육아를 집에서 하기 힘든 경우라면 학교의 긴급돌봄서비스, 어린이집의 긴급보육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히려 긴급보육이 필요한 아이들만 오다 보니 아이들 숫자가 많지 않아 돌봄 관리도 잘 이뤄진다는 것이다. 달서구의 한 유치원은 6일부터 긴급보육을 신청한 원아가 5명에 불과하다.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소독 등 방역관리도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유치원 원장 G씨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유치원에 나오는 아이가 없어도 매일 자체 방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긍정적인 면을 찾는 것도 아이와 부모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현실적이고 사소한 것 중 평소 하지 못했던 일을 해보는 것이다.
김은지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재난트라우마 이사는 "아이들에게 뭘 해보고 싶은지 물으면 공기놀이나 보드게임 등 소소한 것을 바란다"며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평소 하지 못했던 결혼식 사진 보기나 돌잔치 사진 보기 등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고 했다.
아이와 가사 분담을 하는 것도 해볼만 하다. 아이들의 문제 해결 능력과 자신감을 키워주고, 부모에게 지지받는 느낌이 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아이들이 가사 일을 하면서 자라기도 한다"며 "'나도 엄마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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