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따금씩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되새기고는 한다. 앞을 향해 너무나 달려오기만 하진 않았을까. 봄이 성큼 다가온 지금, 앞으로에 대한 건실한 설계도 좋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쉼'이 아닐까.
'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곡가, 바로 존 케이지이다. 그의 수많은 음악 가운데, '침묵의 음악'이라고 불리는 작품 '4분 33초'는 현대음악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새기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쉼이라는 의미를 던져주기도 했다.
어느날, 한 연주자가 천천히 피아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은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악보를 올려놓았다. 청중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숨죽이며 곧 이어질 연주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했던 피아노 소리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연주자가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청중들은 기대했던 피아노 소리 대신 공연장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침소리를 포함하여 삿대질을 하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소리, 웃음소리 등의 소음을 들었을 뿐이다.
연주회에 참석했던 청중들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 연주를 들었다. 정확하게는 연주를 하였지만 연주되지는 않은 음악, 음악은 음악인데 소리가 없는 음악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날 그 곳에 모였던 청중들은 음악 대신 소음을 들었다. '이게 무슨 음악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어쩌면 지금도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이 시도가 음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 음악. 이 작품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음표만이 음악(연주)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존 관념에서, 쉼표도 음악을 전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고, 사람들에겐 충격이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충격이 '여유'와 '쉼'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의 누적된 연주 역사에서 '4분 33초'의 연주는 매우 작은 여유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 여유가 수백년간 빼곡한 음표들로 연주되어온 음악사 전체를 돌아보고, 우리도 모르게 갇혀 있었던 '연주'에 대한 관념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반란은 쉼에서 비롯된 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대화보다 침묵이 좋은 열쇠가 될 수가 있고, 작품에서도 채움보다 여백이 더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이처럼 비워낸 후 새로 시도하는 움직임이 좀 더 값질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도 마찬가지다. 채우기에 급급해 앞만 보며 살아온 지친 일상에 가끔 이러한 '쉼'이 필요하다. 이번 달에는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존 케이지의 빈 악보가 보여준 것처럼 휴식 역시도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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