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근대 문학자료의 수집 업무를 하면서 해당 문인들과 직접 관련된 자료 외에도 대구에서 발행된 동인지와 문학 잡지 등 실로 다양한 작품들을 아카이브로 구축한 바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조사와 수집에서 대구의 근대 대표문인으로 선정된 47인의 유가족과 지역의 원로문인, 고서점들을 탐방하면서 사장(死藏)되어가는 자료를 발굴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명감을 갖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구문학 아카이브 구축으로 2013년 12월까지 1만2천여 점의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후 향촌동의 선남상업은행자리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대구문학관에서도 계속된 작업을 통해 2019년까지 수집한 근대문학 작품만도 2만2천여 점이나 되었다. 하지만 수집 자료가 쌓여갈수록 처음 느꼈던 사명감, 뿌듯함과 더불어 마음 한구석에서는 걱정도 쌓여갔다.
방대한 양의 작품을 아카이빙하여 상설전시나 기획전시를 통해 시민들을 위한 교육, 홍보 자료로 활용하였지만 정작 활용되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대부분 인지도가 있는 작품에만 국한되고 나머지는 다시 수장고에서 재사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기관들이 지니는 공통의 고민과 걱정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한 대처로 국립중앙도서관과 현대미술관, 경주박물관 등에서는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전시에서 활용되는 작품뿐만 아니라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작품의 재사장을 방지하고자 오픈형 수장고를 활용하는 것으로 전시의 형태를 변화해가고 있다.
문학관이 자리한 향촌동은 대구의 중심지로서 조선시대에는 관사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역과 신작로가 들어선 번화가였으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란 속에 전국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서로 문학과 예술을 교류하던 곳이었다. 또한 산업화 시기에는 대구 상업의 중심지로 지역 경제를 이끈 곳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예전의 화려함과 인파가 북적이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당시의 이야기들과 추억을 간직한 건물들이 간간이 제자리를 지키며 그때의 거리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향촌동 일대는 근대 대구의 문화예술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수장고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근대골목투어'와 '대구문학로드'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향촌동의 옛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지만, 최근에는 도시의 역사와 생태를 복원하는 도시재생과는 달리 전면적인 도심의 재개발이 진행되어 옛이야기들이 부서진 건물의 잔해처럼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권번(券番)이 있었던 대구문학관 자리, 일제강점기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며 이근무가 운영했던 백화점 무영당, 대구 최초로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던 백조다방, 한국전쟁기 문화예술인의 만남의 장이었던 르네상스, 모나미 다방, 백록다방이 존재했던 곳이 향촌동이었다.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공공의 기관들이 재사장 되는 작품을 위해 운영의 형태를 변모해 가듯이 재사장될 우려가 있는 향촌동 일대의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아카이브로 구축하여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통해 문화자원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방향을 이제부터라도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미래는 축적된 과거의 기억을 통해 합리적으로 재창조될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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