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2006)
친구 사귐부터 술 마시는 법도까지

아버지와 아들_김남이
아버지와 아들_김남이

우리 역사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들도 들어보았을 이름, 그는 다산 정약용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을 지은 인물이라는 것, 문장과 경학에 뛰어났고, 훌륭한 목민관이었고, 도르래를 이용한 거중기를 만들어 화성 건축에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많이 들어왔다. 그 외에도 천문지리와 교육과 농업과 자연 과학 등의 여러 분야에 박식하기 이를 데 없는 그는 역사 속의 위인일 뿐, 현재의 일상에서 그다지 호기심 당기는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 제목은 이 거장에 대한 일말의 궁금증을 유도한다. 제목에 일견 애잔한 서정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두 아들(학연, 학유)에게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둘째 형님(정약전)께 보낸 편지, 다산의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라는 4부로 엮여진 이 책에서 다산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을 얘기한다. 서정성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편지 형식은 다행히 독자에게도 친근감을 주므로 그 세세함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두 아들에게 어떤 책을 어떻게 만들 것이며, 독서는 어떤 것을 어떻게 하며, 시(詩)의 근본은 무엇이며, 일본과 중국의 학문 경향은 어떠하며, 선비의 마음씨와 사대부의 기상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또한, 거짓말과 무리 짓기에 대한 경계, 친구 사귐과 벼슬살이와 임금 섬김의 태도, 뽕나무와 아욱의 효능, 옛 인물의 국량과 청렴에 대해 들려준다. 둘째 형님과는 중국 요순시대의 고적법이나 수학과 음악 등에 대해 토론하고 제자들에게는 각자에게 요긴한 조언을 내려준다.

그의 수많은 고언은 더러 요즘 세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최근 만취나 SNS 활동에 따른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깊이 와닿는 대목이 있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무슨 맛을 알겠느냐?"(94쪽)라며, 나라와 가정을 파탄시키는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었기에 옛날에는 뿔이 달린 술잔을 만들어 조금씩 마시게 하였다는데, 절제하는 음주의 멋을 새겨볼 만하지 않은가.

또한, 편지 쓸 때는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졌을 때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 또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도 조롱받지 않을 편지인가를 생각해 본 뒤에 비로소 봉해야"(174쪽) 함을 명심토록 하였다. 매체가 급변한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통찰이라 여겨진다. 이렇듯 비범한 아버지를 두지 못한 우리 모두는 두고두고 그의 편지 구절들을 읽으며 내 아버지의 말인 듯 고맙게 지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 둘 곳 없어 술이나 SNS 댓글에 매달린다는 이들에게 다산은 오직 독서만이 살 길이라 한다.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곳으로 글과 붓이 있을 뿐"(38쪽)이라며.

김남이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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