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오늘의 진료에 만족하셨습니까?"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얼마전 저녁을 일찍 먹었던 탓인지 아이들과 의기투합해 야식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배달된 피자박스를 여니 곱게 쓴 짧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한 재료, 한 재료 손질해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부디 기분 좋은 식사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다음에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피자O점장 올림-"

피자를 시켰을 뿐인데 이런 글귀를 받아드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아니 감동이었다. 당연 피자가 엄청 맛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요즘은 어느 음식점에 가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에 대해 그리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대부분 음식점들의 맛이 상당수준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이젠 맛은 기본,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으로 경쟁하고 있다. 미디어에 실린 무수한 광고들도 물건 자체의 경쟁력에 더해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 좋은 경험을 갖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손편지에 감동받은 우리 가족은 앞으로 이 피자집만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병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 병원은 매년 12월이면 전문의 워크샵을 갖는다. 지난 연말에는 특별히 '환자 경험을 행복하게 디자인하라'라는 주제로 강의가 마련됐다. 미래의 의료의 질을 측정하는 기준은 의학적 결과가 아니라 '환자의 만족도'라는 것이다. 자료로 제시한 설문 문항을 살펴보니 치료외적인 부분에 대한 환자 경험을 체계적으로 세분화해 평가·분석하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나' 잠시 자괴감(?)도 들지만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환자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이제 보편적인 지침으로 통일되다보니 웬만해서는 병원별 진료수준의 차이가 크지 않다. 같은 진료를 받고 의료진에게 "고맙다"고 하는 환자가 있는 반면,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서 퇴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환자의 성격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치료를 넘어서서 이제는 환자가 만족하고 감동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하고 이성적인 프로세스를 벗어날 때가 많다. 의료인들은 이를 '라뽀'(Rapport·친밀감)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원래 심리학에서 사용하던 말인데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로 구축된 상호관계를 뜻한다. 환자들은 질병에 대한 원인·증상·치료법·예후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공감해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의사를 더 좋아한다.

'메라비안 법칙'(the rule of Mehrabian)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7%에 불과하며, 표정·억양·음조·태도 등 비언어적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음성(음질·빠르기·크기·말투)이 38%, 태도(겉모습·표정·행동·시선)가 55%에 이르는 반면 대화내용은 7%라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 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 법칙을 의료현장에 직접 대입하긴 어렵겠지만 분명 마음에 새길 필요는 있다. '부드러운 미소'와 '따듯한 말투'로 환자를 대한다면 90%이상은 성공한 것이다.

바야흐로 의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많은 시대이다. 환자들의 눈높이도 많이 올라갔다. 환자 경험 평가 조사에서 '매우 만족'을 체크하게는 못할지라도 나와 만났던 모든 아이들과 부모들이 기분 좋게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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