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자살과 살인

전헌호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전헌호 신부
전헌호 신부

오늘날 한국사회는 1960년대에 비해 1인당 평균소득이 300배나 많아졌기에 행복지수 또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높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때 거의 언급조차 안 될 정도로 적었던 자살자 수가 오늘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아서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현상이고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싶다.

자살과 살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공통점은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자살은 자신의 목숨을, 살인은 타인의 목숨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자신의 삶을 유지해낼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함께 어우러져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가족이나 씨족 단위로 유지되던 원시사회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로 돕는 마음과 행위는 우리의 내면세계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는 또한 삶의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그런데 원치 않게도 한 사람의 내면세계 안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심해지면 자살과 살인에 이르기까지 한다.

남의 목숨을 끊어놓는 살인의 악영향이야 여기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허용되는 일이라면 우리 인간사회는 벌써 망가져서 해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못 본다하더라도 살인행위는 살인자 자신의 양심을 파고들어 결국 그도 옳게 살아가지 못 하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건전하게 살아가도록 '죄를 짓고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며 엄청난 괴로움을 당하게' 안전장치를 해놓으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얽혀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자살행위도 자살자 자신의 목숨만 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모든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자살을 했다면 가족이나 가까운 범위 내의 사람들이 겪는 아픔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고, 그와 무관한 사람에게도 적지 않은 슬픔과 어둠을 느끼게 한다.

삶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저런 고통들을 지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기에, 큰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그들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고통과 역경을 견뎌나가게 한다. 그런데 어떤 이의 자살 소식은 그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아픔뿐만 아니라 듣는 이의 삶에 존재하는 아픔과 고통의 강도도 높인다.

우리가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원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라!'라는 명령이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무조건 살아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대로 잘 살아야 하고 가족과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직접 목숨을 끊지는 않더라도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아무렇게나 살거나 할 일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작은 자살행위에 해당된다. 이런 행위들이 쌓이면 자아실현은커녕 허약해지고 가난해지며 이웃에게도 부담을 준다. 나아가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지도, 옳게 살아가지도 못 하고 심하면 조기사망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이웃이 원하지도 않는데 그의 삶에 깊이 개입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거나, 쓸데없는 비판과 비난, 심지어 험담을 늘어놓거나 사기행각을 일삼는다면 그의 목숨을 직접 끊는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살인행위를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살아라!'라는 명령을 받은 우리는 참으로 조심해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삶을 최대한 살리면서 이웃의 삶도 살려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내리신 최고의 명령이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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