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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임기 말로 치닫는 문재인 정부의 성적이 초라하다. 국정 전반은 파괴의 연속이었다.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시장경제는 흔들렸다. 법치주의는 훼손됐다.

그렇더라도 이는 구체적 수치로 측정 불가니 논외다. 그나마 수치로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야가 경제다.

성적은 느끼는 만큼이다. 집권 3년간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195만 개 사라졌다. 경제성장률은 급기야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가장 파괴적인 것은 재정 분야다. 민간이 성장을 견인하던 나라가 국가재정으로 민간의 삶을 뒷받침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다른 분야는 정권이 바뀌고 정책을 바꾸면 회복이 가능하다지만 한번 어긋난 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후유증이 증폭된다. 문 정권 이후 두고두고 나라와 국민을 괴롭힐 일이 벌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정부 재정 변화에 따른 세대별 순조세 부담' 보고서는 이를 웅변한다. 이에 따르면 문 정부 들어 미래 세대의 순조세 부담이 크게 늘었다.

2019년부터 국가 재정수지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가 덮치기도 전이다. 2018년 31조2천억 원 흑자이던 재정수지가 2019년 12조 원 적자로 돌아섰고, 10조6천억 원이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4조4천억 원으로 5배가 됐다.

그 결과 미래 세대의 순조세 부담이 1억4천306만 원 늘었다. 반면 현 세대 부담은 대부분 연령층에서 최대 753만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순조세 부담액이 플러스면 내야 할 세금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국가로부터 받을 혜택보다 많다는 뜻이고, 마이너스면 국가가 주는 혜택이 더 많다는 뜻이다. 플러스 폭을 키웠으니 미래 세대의 국가적 혜택은 줄어들고 세금만 잔뜩 늘었다. 세대 간 불평등도(GI) 역시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덮어놓고 곳간을 열다 보니 빚은 가파르게 늘었다. 문 정부 첫해 660조 원이던 나랏빚이 올해 말이면 적어도 966조 원이 된다.

내년이면 1천91조2천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가채무가 5년 만에 430조 원이 늘게 생겼다. '적어도'라고 한 것은 정부가 또 빚 추경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늘어난 나랏빚 350조 원보다 더 많다. 취임 전 35% 선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말 48.2%로 치솟는다.

지난해엔 잇단 추경으로 마지노선이라던 40% 선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자 마지못해 재정 준칙을 만들며 이를 60%까지 높였다. 그래도 올 4월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국채 비율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26년 69.7%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 정부는 내년 대선까지 돈을 풀겠다며 거침이 없다. 아예 '내년까지 확장 재정'을 선언했다. 이번에는 30조 원짜리 추경을 예고했다.

가능하면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추경을 않아도 2025년이면 국채 비율이 60%를 넘어 61.7%에 이른다. 일본은 1990년 60%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10년 만인 2000년 130%까지 올랐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그렇게 시작됐고, 그 10년이 20년이 되고, 30년이 됐다.

과거 지도자들은 후세대를 위해 허리띠 졸라 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채 비율을 40%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지도자는 빚으로 국민을 끌고 가면서도 '마중물'이라고 둘러댄다.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한다. 이 말은 가정에서도 유효하고, 국가적으로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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