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코로나 '생리 빈곤'] 올해부터 바우처 지원 연령 확대했지만…여전히 10% 미만

올해부터 생리대 바우처 지급 연령 만 9~24세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이외 청소년은 사각지대
바우처 금액 모자라 진통제로 버티는 여성청소년

대구의 한 편의점에 비치된 생리대. 김세연 인턴기자
대구의 한 편의점에 비치된 생리대. 김세연 인턴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생리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부터 저소득층 여성청소년의 생리대 구입을 지원하는 '생리대 바우처' 지급 대상이 확대됐지만, 지원 대상에서 벗어난 이들은 여전히 매달 아슬아슬한 월경일을 보낸다.

◆생리대 바우처 사각지대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을 통해 생리대 바우처 지원 대상 연령을 기존 만 11~18세에서 만 9~24세로 확대했다. 여성청소년의 초경 시기가 앞당겨지고 성인이 된 후에도 빈곤으로 생리대를 구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생리대 보편 지급에 한 발짝 더 다가가자는 취지다.

생리대 바우처는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 수급자, 법정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지원대상자일 경우 생리대 구입 비용으로 월 1만2천원(연간 최대 14만4천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대구시 생리대 바우처 지급 대상은 1만4천523명으로 전체 여성청소년 18만6천84명 가운데 7.8%이며 관련 예산은 15억1천600만원이 확보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여성청소년은 생리대가 없어 온종일 하나의 생리대로 버티거나 휴지로 갈음하는 등 생리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바우처 지원 대상에서 근소하게 벗어난 이들로,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은데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대구여성가족재단 관계는 "바우처 지급 대상은 소득분위로 판단되기 때문에 기존에 지원을 받던 아이가 소득분위에서 약간 벗어났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탈락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 예산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도 했다. 중구청은 올해부터 바우처를 받지 못해 생리대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청소년 52명을 선발해 생리대 구입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대구 북구학교밖쳥소년지원센터 관계자는 "특히 한 가정에 여자아이들이 많은 경우는 부담은 계속 늘어난다"며 "실제로 부모님과 이야기해보면 생리대 등 생필품 마련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생리대 바우처 지원금도 역부족

생리대 바우처 지원금이 넉넉하지 못해 생리대 구입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도 발생한다. 생리 양이나 착용 시간에 따라 사용해야 할 생리대 종류가 다르지만 월 1만2천원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생리대는 한정적이다.

17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월 28일 기준 한 생리대 브랜드 중형(32개입) 전국 전체 판매점 평균가격은 8천463원이다. 여기에 생리양이 많을 때 사용하는 대형 생리대(16개입 기준, 3천원~5천원 선), 밤에 사용하는 생리대(8개입, 4천원~5천원 선)까지 구입했을 때 월 1만2천원으로는 부족하다.

학교 밖 청소년 B(17) 양은 "오버나이트나 대형 생리대가 더 필요해도 비싸기 때문에 일부러 소형 제품을 사는 경우도 있다"며 가격이 부담스럽다고 호소했다.

B양은 생리대를 넉넉하게 사지 못할 때는 지원금으로 진통제와 핫팩을 산다고도 했다. 가끔 생리 양이 많은 날에는 바우처 금액으로 감당할 수가 없어 생리통에 대비한 진통제와 핫팩을 사는 것이다.

◆'보편적 지원' 논의 언제쯤…예산 문제로 난색

여성계와 복지계는 일찌감치 모든 여성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급하는 생리대 보편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생리대 바우처 제도뿐만 아니라 동 행정복지센터, 복지관 등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생리대 물품 후원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대다수 여성청소년이 물품을 받는 데 부끄러움을 느껴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2019년 영남대 여성주의 소모임 'ready for radi(약칭 RFR)'는 대구시설공단과 협력해 생리대 보편지급을 위해 대구역 지하상가, 대구역, 경산역의 여자 화장실에 정혈대(생리대) 공유함 설치에 나섰다.

2019년 12월 대구역 지하상가 여자 화장실에 1개, 2020년 2월 대구역 여자 화장실에 2개, 2020년 6월 경산역 여자 화장실에 1개 등 모두 4개의 공유함을 운영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운영상 어려움으로 2년 만에 공유함은 철거됐다.

RFR 관계자는 "당시 기존 목표는 1년 자가 운영 후 대구시 자체 정책으로 확장되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불가능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생리용품은 모든 여성이 몇 십 년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물품이기에 적극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도 대구시의 생리대 지원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2020년 대구시는 '여성청소년 보건위생물품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지만 예산 부족의 이유로 생리대 보편 지원이나 지원금 대폭 확대에 나서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 지침에 따라 지난해 생리대 바우처 지원 금액을 기존 1만1천500원에서 올해 1만2천원 상향에 그친 게 전부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시에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려면 약 108억이 넘게 든다. 예산 한계가 있어 우선 여성가족부에 따라 발 맞춰서 가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여자 화장실에 비치된 정혈대 공유함. 배주현 기자
대구여성가족재단 여자 화장실에 비치된 정혈대 공유함. 배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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