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체스 천재가 선사하는 날카로운 쾌감

퀸스 갬빗(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번역/ 연필 펴냄/ 2021년)

나이 어린 천재들의 행보는 언제나 흥미롭다. 혜성 같은 등장에서부터 화려한 퇴장 혹은 드라마틱한 몰락까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퀸스 갬빗'은 10대 체스 천재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는 성장 소설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물론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점은 뚜렷하다.

드라마가 베스의 재능과 성장 과정에 초점을 둔 반면 소설은 천재의 내면에 좀 더 집중한다. 소설의 경우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약에 의존하는 과정과 그 감각, 나이가 좀 더 들어 알코올에 손을 대고 중독되는 이유를 소상하게 묘사한다. 베스가 아침부터 와인을 들이켜는 느낌이 너무 섬세하게 그려져 혹시 작가의 경험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소설이 천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베스에게 체스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승부의 짜릿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 "손끝으로 나이트를 집었을 때 그것의 힘이 절묘하게 느껴졌다. 나이트를 내려놓자 완전한 적막이 주위를 삼켰다."(504쪽)

베스가 체스를 둔다는 것은 특별한 체험을 하는 순간이며 자기 몸을 살피는 일이다. 경기 상황에 따라 그녀는 두통이나 복통을 앓기도 하고 초경을 경험하기도 한다. 패배의 절망감은 소녀를 알코올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게도 한다. 그만큼 베스는 감각을 우선시하는 체스를 둔다. '퀸스 갬빗'이 독창적인 지점은 천재의 재능을 몸의 감각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

본래 퀸스 갬빗이란 용어는 오프닝이라는 체스의 초반 전술 중 하나다. 상대의 반응에 대응한 여러 파생이 존재하기 때문에 반응과 심리, 그리고 본 게임에서의 판세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체스에서 가장 강력한 기물인 퀸을 활용해 효율적이면서도 초반 판세를 장악할 수 있는 전술이지만 운용에 플레이어의 직관이 중요하다. 그만큼 개인의 책임과 위험이 뒤따라 짜릿하면서도 고독한 방식이다.

베스가 산 1950년대 체스 분야는 남성들만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혜성처럼 등장한 소녀가 고독에 굴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며 자기 방식으로 남성들의 세상을 돌파해 나간다. 자신의 가능성을 부여잡고, 당대 체스 최강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천재의 담대한 여정. 퀸스 갬빗이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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