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진정한 통일은 트라우마 치유에서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우리 민족의 20세기 시작은 고난과 비극의 역사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후, 35년간 일제강점기의 '식민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식민 트라우마'를 치유할 시간도 없이 우리를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 양국이 각각 주둔하며 '분단 트라우마'는 시작된다. 결국 1948년 남과 북은 각각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갈라지게 된다. 그러고 나서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민족적 대의라는 가짜 명분으로, 소위 남한을 해방하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남침을 감행한다. 6·25전쟁은 남북한 200만 명 이상의 안타까운 인명 피해를 낳았다.

'분단 트라우마'에 더해 '전쟁 트라우마'가 겹쳐진 남북한의 이중 트라우마(double trauma)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의 현재 삶에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북한 국민의 '분단·전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트라우마를 억압하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방식이 아닌 남북한 국민 개개인이 먼저 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민족 공통성과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상호 적대적 대결, 갈등, 불신의 77년 분단 속에서 남북한 국민들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트라우마를 나누고 치유할 시간이 없었다. 아직도 남북한 국민이 서로 만나 소통할 기회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북한 사람들의 만남의 기회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우리 국민으로 살고 있는 3만5천 명의 새터민이다. 새터민을 우리와 대한민국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통일 능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새터민에게 다가가자. 그들에게 잘살지만 배려가 없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뜻한 만남으로 '분단·전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남북통일을 위한 작지만 큰 첫걸음이 되도록 하자. 새터민과의 따뜻한 만남을 통해 남북이 공유했던 옛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민족 공통성을 만들어 나가자.

윤석열 대통령은 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민생을 위한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레드 콤플렉스가 없는 보수 정권인 윤석열 정부는 먼저 3만5천 명 새터민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 북녘땅에 살고 있는 북한 국민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이 최소한이라도 보장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원을 하길 바란다. 윤석열 정부가 남북한 정권 차원이 아닌 남북한 국민의 민간 교류를 보다 더 확대하고 적극 지원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아직도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남북한 국민의 민간 교류를 확대하여 남북한 정권만의 통일이 아닌 국민적 통일이 되길 바란다. '선(先) 남북통일, 후(後) 국민통합'이 아니라 '선(先) 치유적 국민통합, 후(先) 남북통일' 방식으로 나아가는 담대한 구상의 첫발을 내딛길 기대한다.

일제 식민 지배가 분단으로 이어졌고 전쟁을 통해 분단의 골이 깊어졌지만, 남북통일은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이자 치유의 결과여야 한다. 진정한 통일은 '분단·전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평화를 넘어 남과 북 8천만 명의 국민이 행복해지는 통일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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